[기자수첩]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랑’만으론 안 됩니다

이주형 기자 2025.05.15 16:03:12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비혼’이 난리다. 결혼·출산·성공을 포기한 일본 ‘사토리 세대’, 중국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불혼주의(不婚主義)’ 문화 등 이웃 국가들만 봐도 사례는 명확하다.

지구 반대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의 40대 미혼율은 2021년 기준 25%를 넘어섰으며,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신생아 중 비혼 부모에게서 출산된 비율)은 2022년 기준 64%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떨까.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분석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30~34세 미혼율이 56.3%로 나타난다. 이는 지난 2000년 기준 18.7%에 비해 3배 가량 증가한 수치로, 국내 미혼 청년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혼율 급증에 따라 한국 사회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 당연시 여겨지던 결혼 문화는 이제 선택의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1인가구가 늘면서 ‘혼코노미(1인가구+이코노미)’ 문화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여기에 처가나 시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육아 스트레스에서도 자유로우니, 혼자 사는 삶이 더 매력적이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다만 현실과 타협해 형성된 문화가 아닌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청년 미혼율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비자발적인 선택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쉽게 말해 결혼을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청년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들 중에는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4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의향이 있는 청년 1인가구는 전체의 64.5%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중 73%는 결혼자금과 주거 문제 등 경제적 부담을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고용 한파와 높은 집값, 고물가·고금리 등 얼어붙은 경제 여건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결혼까지 생각하기엔 현실의 벽은 그만큼 높다.

이와 함께 출산 후 마주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도 미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의뢰로 수행한 ‘2023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률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사업체 규모에 따라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300인 이상 규모의 기업에서는 94%가 ‘필요한 사람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5~9인 규모 사업체에서는 그 비율이 55.4%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육아휴직 사용이 어렵고 제도적 보호도 취약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더라도 복직 후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타 부서로의 발령이나 권고사직 등 보이지 않는 압력은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과 연계해 특별회계 도입과 예산 사전심의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가정 양립 ▲육아 ▲주거 등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세 가지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그러나 해당 계획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길을 잃었다. 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서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논의가 중단됐으며,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104억 원으로 책정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사실상 조직 운영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시혜적 성격의 지원정책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결혼지원금 등 일회성 현금 지원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안정적인 주거환경과 고용 여건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청년들은 점점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 안하는 것보단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삶의 질은 높아졌으나 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부실하다. 최근에는 ‘비혼 출산’ 도입 논의까지 나오며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정책의 방향성이다. 당장 반발이 있을지라도 청년과 사회, 국가를 함께 바라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표심(票心)에 집중하다 보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지혜를 상징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냉철하고 현명한 리더십이 하루 빨리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CNB뉴스=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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