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광그룹 품에 안긴 애경산업…‘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도기천 기자 2026.03.27 12:58:40

대한민국 최대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의자 ‘애경산업’, 태광그룹이 인수 완료
현재도 재판 진행 중…브랜드 이미지 타격
태광의 ‘K뷰티 꿈’ 걸림돌…사명 변경할까

 

서울 마포구 홍대역에 위치한 애경그룹 통합 사옥 ‘애경타워’. 태광그룹은 애경산업을 인수했지만 애경산업 사옥은 당분간 그대로 이곳에 둔다. (사진=도기천 기자)

태광그룹이 26일 애경산업 인수완료를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가운데, 과거 애경산업이 판매해 수천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재판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을 태광에 매각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리스크’를 애경그룹이 떠안기로 태광 측과 합의했지만,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태광이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애경’ 브랜드를 포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국내에서 세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됐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제조해 애경산업이 판매했다.

 

그런데 가습기 메이트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 성분이 뒤늦게 발견됐다. 2000년대 들어 첫 재판이 시작됐고 수년간 치열한 법정 공방이 펼쳐졌다. 2021년 1심 재판부는 “독성 물질과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다시 3년 간의 공방 끝에 2심 재판부는 제품 사용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애경산업 전 대표 등에게 금고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동정범(여러 기업이 함께 책임을 지는 것)’ 법리 적용에 오해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며 오는 7~8월경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대법원 항고가 진행될 경우 재판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 사건은 태광의 애경산업 인수 과정에서도 핵심 쟁점이 됐다.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기업 가치 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 이로 인해 실제 인수 가격이 당초 예상액보다 수백억원 감액된 것으로 알려졌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 리스크’ 책임을 떠안기로 태광 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태광이 ‘애경’ 브랜드를 계속 유지할 지는 의문이다.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기업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은데다, 중국 시장 판도 변화와 국내 수요 감소로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7.8% 감소했으며, 특히 화장품 부문 영업이익은 무려 74% 급감했다.

 

작년 8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4주년 기자회견에서 가습기 살균제 독성 물질로 희생된 영유아·어린이들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태광, ‘애경’ 사명 유지하면 로열티 낼 수도



태광그룹은 적극적 투자를 통해 애경을 글로벌뷰티 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32% 수준이던 화장품 매출 비중을 오는 2028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특히 글로벌 매출 비중을 높이며 미주와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해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태광그룹 계열사로서 새 출발은 질적인 변화의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K뷰티를 대표하는 토탈뷰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도전과 혁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광이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 사업을 확장하려면 ‘가습기살균제 리스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애경그룹이 전적으로 리스크를 책임지기로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애경산업’ 사명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증인으로 채택된 애경산업 전현직 임직원들도 법원을 들락거려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을 애경그룹이 안고 간다지만, 그건 태광그룹과의 합의사항일 뿐 소비자들은 여전히 그 사건에 있어 애경산업을 기억하고 있다”며 “더구나 재판이 길어지면 한동안 애경산업 이름이 계속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는데 K뷰티를 꿈꾸는 태광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 애경타워에는 애경산업 외에도 애경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태광그룹으로서는 상관없는 회사들과 같은 ‘애경’ 이름 아래 살림을 차리게 된 셈이다. 사진은 애경타워 로비 안내판. (사진=도기천 기자)

‘애경’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상표권 사용료)도 태광 입장에서는 부담스런 부분이다. 상표권 사용료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소유한 브랜드(상표)를 타인이 사용할 때 지불하는 대가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CNB뉴스에 “일정기간 동안은 태광이 무상으로 애경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합의했지만, 합의 기간 이후에도 브랜드를 사용한다면 로열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광 측은 브랜드 사용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당분간 애경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가습기 재판 과정과 브랜드의 시장 신뢰도 등을 따져 보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당분간 기존의 애경산업 사옥인 홍대 애경타워를 그대로 사용할 예정이다.


애경타워는 애경그룹이 2018년 ‘구로 시대’를 마감하고 홍대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주요 계열사들을 한곳에 모은 통합 사옥이다. 애경산업 외에도 AK홀딩스(애경그룹 지주사), 애경케미칼, 제주항공 등 6개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태광그룹으로서는 상관없는 회사들과 같은 ‘애경’ 이름 아래 살림을 차리게 된 이상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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