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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남사람’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26년 터전 잃은 영동시장 털실가게 아주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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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오재현기자 |  2007.02.03 10:55:15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영동시장은 주상복합아파트 입주라는 재개발 광풍으로 3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사진= 오재현 기자)

2006년 9월 26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동시장 상인들과 임대아파트 거주자들은 이날 새벽 들이닥친 철거용역 400명에 30년 가까이 고단한 삶을 같이했던 가게와 보금자리가 맥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탁인숙(49,여) 아주머니는 이날 새벽 일사천리로 이뤄진 철거에 미처 가게에 있던 물건마저 챙기지 못 했다. 철거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마땅한 가게 자리를 얻지 못한 탁 아주머니는 현재 매달 16만원이라는 보관료까지 물고 있었다.

탁인숙 아주머니는 “10년 전 보증금을 받고 가게를 팔았다면 그래도 지금쯤 임대아파트 한 채는 가지고 살았을텐데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계속 생활했더니, 이제 보증금과 이사비용 합쳐서 1,000만원으로 갈 곳도 없는 처지가 됐다”며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강남사람’에서 나 같은 사람은 참 특이한 강남사람일 것 같다”고 말했다.

■ 자식 둘 키워 대학 보낸 가게였는데…

▲26년 삶의 터전을 하루만에 잃은 영동시장 상인 탁인숙(49) 아주머니. 재개발과 철거는 평생을 털실가게를 하던 탁씨 아주머니가 머리끈을 묶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사진= 오재현 기자)

탁인숙(49) 아주머니는 서울 영동시장에서 1980년부터 26년 동안 털실 가게를 하고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한창 목도리와 겨울 옷을 만들어 팔아야하지만 탁 아주머니의 가게는 지난 2006년 9월 26일 새벽 자취를 감추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탁 아주머니는 이 털실가게에서 장사를 하면서 첫째인 딸과 둘째 아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이제는 사라진 영동시장 앞에서 탁 아주머는 최근 자신의 아들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엄마, 우리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공부를 더 오래 하고 싶은데 내가 빨리 졸업하고 취직할까?”

탁 아주머니는 기자에게 “세상에 어떤 부모도 마음이 그렇지가 않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공부하고 싶은 자식 뒷바라지를 계속 하고 싶은데 아들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하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탁 아주머니의 아들은 현재 서울 모 대학 일본어학과에 재학중이며 현재 대학을 휴학하고 군 입대를 생각하고 있다.

■ 강남 재래시장 30년, 역사의 뒤안길로

▲탁인숙(49) 아주머니가 철거 이후 철벽으로 가려진 26년 동안 장사를 했던 터를 가리키고 있다.(사진= 오재현 기자)

영동시장은 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강남 몇 곳 안되는 재래시장이었다.

이마트 같은 대형유통점이 들어서기 전 그래도 장사가 됐을 때는 점포 100여개가 성황을 이뤘다. 수년 전만 해도 재래시장이 강남에 몇 군데 없어서, 양재동이나 한남동에서도 영동시장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한푼 두푼 모아 생계를 유지하고 아들·딸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탁인숙 아주머니 뿐만 아니라 영동시장 상인 20명과 임대아파트 거주자 130명 등 150명은 철거에 가게와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한때 100여 점포들이 있던 때도 있었지만 주변에 들어서는 대형유통점으로 영동시장은 여느 재래시장처럼 수명을 다했다.

영동시장은 전체 1,000여평에 달하는 건물과 토지를 동화상가 측이 소유하고 있고, 상가 주인은 기존 1~2층 100여개 점포와 임대아파트 3,4,5층을 허물고, 주상복합아파트로 재개발할 계획이다.

서울시와 관할구청인 강남구청도 재래시장 재개발을 권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해 8월 강남구에 남은 재래시장 한성영동시장(논현동)·청담제일시장·역삼종합시장 등에 대한 1~2층 상가와 그 위층에 아파트를 짓는 주상복합아파트 재개발을 권했다.

지난 해 9월 26일 철거이후 45일 동안이나 강남구청 앞에서 노숙을 하며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탁 아주머니는 “구청장 얼굴을 한번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재래시장육성이니 뭐니 해도 이렇게 재래시장이 죽어나가는 것은 대책도 세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가 주인은 보증금은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30년 전 보증금에서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탁 아주머니의 경우, 이사비용 200만~300만원을 포함해 포기할 경우 1,000여만원을 보상받는다.

사라진 영동시장 바로 옆에 있는 논현시장의 한 상인은 “요즘 논현시장 가게 보증금이 6,000만~ 7,000만원인데 영동시장에서 쫏겨난 이들이 이 곳으로 옮기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 대책없는 철거, 길바닥으로 내몰린 도시빈민…

▲현재 강남구에 남아있는 재래시장은 논현시장·청담제일시장·역삼종합시장 등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이들 재래시장 터에 1~2층 상가와 아파트가 들어서는 주상복합아파트로의 재개발을 권유하고 있다.(사진=오재현 기자)

뜻밖에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는 영동시장 상인들에게도 시련을 주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낙후된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있었고, 영동시장 건물은 c등급을 받아 점포를 파는 재산권 행사도 발이 묶였다. 상인들이 장사가 안 돼 점포를 내놓고 보증금을 받아 터를 옮기려해도 불가능했다.

결국 수년전부터 영동시장 100여개 점포 가운데 주인없는 점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고 작년 철거 직전에는 불과 20여개 점포 상인들만이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강제철거와 퇴거 등 주거권 침해는 물론 이 과정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7년부터 향후 5년간 정부의 인권정책을 권고하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NAP)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없는 강제철거를 금지하고 철거대상자에게 적절한 보상과 대안적 거처를 제공하여 주거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탁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처럼 “상가 주인이 두어 번 정도 와서 이야기하더니 강제철거를 했다”는 대목에서, 재개발 계획에 거주민과의 사전협의와 동의절차가 미흡함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도시 빈민, 탁인숙 아주머니는 대형유통점에 한 번. 주상복합아파트 개발 광풍에 또 한번 시련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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