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불륜 파문으로 사직한 법무부 소속 H 전 상하이 영사와 내연관계였던 중국 여성 덩신밍씨.(사진=연합뉴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들이 30대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 33)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다음 그 대가로 국내외 중요 정보 및 한국 비자 부정발급, 큰 이권이 걸린 한국 비자 신청 대리점 등을 준 것으로 드러나 중격을 주고 있다.
특히 내연관계였던 이 여성에게 유출된 것으 로 알려진 자료 중에는 국내 유력 정관계 인사 200여명의 휴대전화번호 등 연락처와 주상하이 총영사관 비상연락망, 비자발급 관련 자료, 외교통상부 인사 관련 문서 등 각종 기밀이 포함돼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국내 언론에서 입수한 덩씨의 사진 파일들에는 한나라당 서울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 비상연락망,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선거대책위원회 비상연락망 등 정부·여당 인사들의 연락처가 빼곡히 기재돼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 실세와 여당 의원들의 번호를 사진으로 찍은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엑셀 문서파일까지 발견돼 정부 기밀을 적극적으로 수집해 빼돌렸을 수 있다는 관측과 함께 이번 사건을 한 외교관과 현지 여성의 단순한 치정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기밀 자료가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재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휴대전화번호만 알면 도청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만일 이 자표가 외국 정보기관에 정부 요인들의 휴대전화번호가 넘어갔다면 통화상 기밀이 도청당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MB 선대위 비상연락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자료에는 이 대통령은 물론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 이방호 지방분권촉진위원장 등 현 정권 실세들의 휴대전화번호 등 연락처가 망라돼 있으며, 또한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장광근, 이춘식, 현경병, 이범래, 김동성 의원 등 현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번호도 등장한다.
‘서울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 비상연락망’에는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동대문을)과 박진(종로), 정태근(성북갑), 권영진(노원을), 이성현(서대문갑), 이혜훈(서초갑), 강용석(마포을.현 무소속) 의원 등의 번호가 공개돼 있다.
▲올해 초 불륜 파문으로 사직한 법무부 소속 H(41) 전 상하이 영사와 내연관계였던 30대 중국 여성 덩신밍에게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비상연락망
이밖에 덩씨가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진 자료에는 붉은색 글씨로 ‘대외보안’이라고 명확히 찍혀 있는 ‘주상하이 총영사관 비상연락망(2010년 9월)’과 ‘2008년 사증발급 현황’, ‘사증개별접수 대행 여행사 현황’ 등 비자발급 관련 자료도 상당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유출 자료 중 ‘특채 파동과 연평도 혼란에 묻힌 외교부 인사’라는 제목의 사진파일에는 작년 9월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파동에 따른 후속 인사가 G20 정상회의 준비와 연평도 포격 사건 수습으로 뒤로 밀렸다는 내용과 차관직의 구체적인 하마평이 나오는 한국 외교부 인사와 관련된 문서도 있다.
이들 자료는 국내에서도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중요 자료인 데다 국내 정치나 외교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만한 내용들이어서 유출 경위와 함께 덩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과 잇따라 불륜 파문을 일으킨 덩신밍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 정·관계에서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현지 교민사회에서는 한때 중국 고위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 등소평)의 손녀라는 소문이 돌았을 만큼 실력자로 알려졌으나 덩씨의 배후나 배경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 덩씨의 한국인 남편인 진모(37)씨 조차도 그녀의 실체는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여러 한국 외교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유출돼서는 안 될 국내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배후에 중국 정보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덩씨가 비자발급 업무를 맡았던 법무부 소속 H(41) 전 상하이 영사에게 접근한 데다 실제로 비자를 부정발급받은 것으로 볼 때 중국 현지의 전문 '비자 브로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는 “상하이 당서기·시장 등 중국 요인들과 면담을 주선했고 한 영사의 이삿짐이 중국 세관에서 문제가 됐을 때도 덩씨의 도움으로 원만히 해결했다”며 “중국 상층부와의 친분이나 행적으로 볼 때 상당한 실력자”라고 전했다.
하지만 김 전 총영사는 “주소지 정도를 파악한 것이 전부이고 사생활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고 전했으며, 덩씨와 친분이 있었던 K(43) 전 영사 역시 “덩씨의 실체는 지금도 모른다. 여러 얘기가 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덩씨는 최근 불륜 파문을 일으킨 H 전 영사 외에도 K(42) 전 영사나 P(48) 전 영사 등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할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략적으로 한국 공관의 외교관들에 접근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