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기(娼妓)는 노래와 춤을 업으로 하는 기생(妓生)이다. 조선에서는 서울과 지방의 관적(官籍)에 올라 관아(官衙)에 배속됐다. 세계의 창기는 발생 배경이나 활동이 비슷하다. 특히 문화적으로 교류가 많았던 조선의 창기는 중국의 창기를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
조선의 창기에 대한 것을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인 ‘중국창기사(中國娼妓史)’가 어문학사에서 나왔다.
은나라 무창부터 중화민국의 창기까지 잇는 장구한 역사를 다룬 이 책은 왕서노의 원본을 중앙대 신현규 교수가 번역했다.
중국 창기의 기원은 은나라 무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종교 매음(宗敎賣淫)을 목적으로 삼는 창기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원시 사회에서는 무창의 계급들이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무풍(巫風)이 가장 성행한 은(殷)나라 때 종교 매음의 사실과 무창(巫娼)의 유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은(殷)에 이르러 여무(女巫)들은 창기들의 기본인 재(才), 정(情), 색(色), 예(藝)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근대의 ‘직업 창기’와 같이 남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형색을 아름답게 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창기의 업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각 시대별로 창기의 역할은 다소 다르다. 은대(殷代)에는 무창(巫娼)이 생겨났고 서주(西周)시대에는 노예 창기로 변모했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는 가기(家妓) 및 노예(奴隸) 창기(娼妓)가 공존했다.
그리고 당(唐)·송(宋)·원(元)·명(明)시대에는 관기(官妓)의 전성 시대였다. 청대(淸代)에는 사설(私設) 경영(經營)의 창기(娼妓)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가는 중화민국의 근현대의 창기의 삶도 다루고 있다.
저자 왕서노는 창기의 형태가 어떻게 급속도로 변모했는지 중국의 역사와 연관 지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모두 5개의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