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 KT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결국 KT는 무궁화 3호를 재매입하기 위해 ABS와의 협상에 들어갔지만 ABS 측이 상당한 위약금을 요구하고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 수명이 다한 위성을 다시 사들이려는 정부의 태도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CNB가 한 나라의 인공위성이 아파트 한 채 값에 팔린 사연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KT “헐값매각 사실과 달라…수명 다돼 판 것”
무궁화위성 사건 ‘KT손보기’서 비롯…본질 흐려져
재매입 ‘국제분쟁’ 초래… 경제가치․실효성 없어
이번 사태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2011년 ABS에 팔린 무궁화 3호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판매됐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마침 당시는 검찰이 KT 이석채 전 회장의 비리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검찰은 KT가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해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혐의로 참여연대가 고발한 건에 대해 이 전 회장의 자택과 KT본사 등 16곳을 전격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 즈음에 유 의원이 KT자회사인 KT샛이 무궁화 3호를 불법매각 했다고 주장한 것.
파장이 커지자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미래부는 KT샛이 전략물자인 무궁화 3호를 대외무역법에 따른 적법한 수출허가를 받지 않고 매각한 것은 강행법규 위반이라고 발표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18조는 허가받은 기간통신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핵심 설비를 매각할 경우 미래부 장관의 인가 또는 신고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 핵심 전기통신설비 매각 시 50억원 이상은 장관의 인가를, 50억원 미만은 신고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KT는 무궁화 3호 위성을 ABS에 매각하면서 신고하지 않았다.
KT는 무궁화 3호의 위성서비스가 대부분 ‘올레1호’(무궁화위성 6호)로 대체돼 필수 설비가 아니고 무궁화위성 매각대금이 5억3000만원에 불과해 인가․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래부는 위성 자체가 국가전략물자이기 때문에 신고절차를 거쳤어야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래부는 올레1호로 대체되지 않은 일부 서비스가 남았고 올레1호 장애시 3호가 이를 대체하도록 한 점에 주목해 3호를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핵심 설비로 봤다.
또한 미래부는 KT가 무궁화 위성 용도로 주파수를 할당받아 놓고 이를 ABS에 양도한 것은 전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통상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국가는 우주자원 질서 차원에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특정 궤도와 주파수를 배당받아 ITU에 등록한다. ITU에 주파수와 궤도 사용을 등록하는 권리는 해당 국가의 정부만이 갖는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ITU에 등록해 확보한 궤도와 주파수를 KT가 신고절차 없이 ABS에 양도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
미래부는 KT에 대해 각각 대외무역법,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우주진흥법 위반으로 7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또 당시 ABS와 KT 간의 거래가 원천적으로 무효라며 무궁화 3호를 매각 이전 상태로 되돌릴 것을 KT측에 명령했다. 3호 위성을 주파수 이용계획서에 따라 재운용하고 ITU에 등록한 위성궤도와 주파수를 되찾아 오라는 게 정부 주문이다.
검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이석채 전 회장의 배임혐의 수사에 이번 건을 추가해 조사 중이다.
검찰 조사에서 KT가 정부 허가 없이 홍콩 업체에 무궁화위성을 양도한 것으로 확인되면, KT는 최대 3년간 인공위성을 수출하지 못하는 수출입제한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또 관련자는 최대 5년의 징역, 수출액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벌금 등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김영택 KT샛 부사장이 지난해 11월 4일 KT광화문 사옥에서 무궁화 위성 매각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T측은 매각 과정에서의 법·절차 문제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헐값매각, 주파수 독점권 양도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KT관계자는 CNB에 “무궁화 위성이 KT가 공사였던 시절에 제작·발사됐지만 2002년 KT가 민영화되면서 KT 자산으로 전환된 데다, 수명이 12년으로 다 된 상태라 국가전략물자로 판단하지 못했다”며 “더구나 매각 당시 관련법을 해석하면서 장비 가액이 일정액 미만이면 신고 없이 매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헐값매각 논란과 관련해서도 “위성 자체의 매매가격은 5억원이 맞지만 기술지원·관제비용 등 200억원의 관련 계약이 체결돼 실제 매매 가격은 200억원에 이른다”고 반박했다.
주파수 양도 논란에 대해서는 “우리가 사용 중인 주파수를 홍콩 ABS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라 2016년 위성발사 때 사용할 주파수를 미리 받아둔 것으로, 매각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였다”며 “홍콩은 홍콩대로 별도의 해당 궤도와 주파수가 있으므로 우리 주파수를 양도받아 사용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 KT샛의 김영택 사업총괄 부사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식적으로 우리가 홍콩에서 위성을 사온다고 했을 때 우리가 홍콩 주파수를 살 수 있겠나”며 “위성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주장과 할당받은 주파수를 ABS에 매각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력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매각 당시 왜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시 경영진이 법을 해석하면서 장비 가액이 일정액 미만이면 신고 없이 매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법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법·절차 위반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KT측은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하는 한편 미래부의 명령에 따라 무궁화 3호를 사들인 ABS와의 위성 재매입 협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ABS측이 매입 당시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BS는 중동지역에서 무궁화3호를 이용한 위성서비스를 하고 있는 상태라 위성을 다시 사들이려면 이에 따른 ABS측의 손실분을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 협상이 안될 경우 국제 분쟁 조정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미래부는 KT가 위성을 되찾아오지 못할 경우, 향후 위성서비스용 주파수 할당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KT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
정권 바뀔 때마다 외압…기업자율성 존중해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KT에 대한 정부 조치가 다소 감정 섞인 대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전략산업인 ‘위성 운용’ 문제가 ‘KT길들이기 카드’로 활용되는 바람에 해결 방향이 흐려졌다는 것.
미래부가 재매입에 따른 비용문제, 외교분쟁 소지 등 상당한 부담을 안고서라도 KT에 대해 ‘위성 재매입 명령’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당초 이번 사건이 KT에 대한 손보기 성격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KT는 2002년 8월 민영화됐으며, 정부는 KT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바뀌었고 그때마다 외압설이 끊이지 않아 왔다.
지난해 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이명박 정부때 선임된 이석채 전 회장에 대한 교체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이 전 회장이 ‘버티기 모드’에 들어가자 검찰이 참여연대 고발 건을 캐비넷에서 꺼냈고, 이 시기에 무궁화 위성 불법매각 혐의도 함께 불거졌다.
미래부와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자 이 회장은 결국 지난해 11월 사임했다. 이 회장의 측근으로 KT CEO 후보에 거론됐던 정성복 KT 부회장도 지난달 물러났다. 일각에서는 이런 과정을 근거로 애초부터 정부가 ‘무궁화 위성 사건’에 대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무궁화 3호를 재매입 하는 것이 경제성․실효성이 있냐는 지적도 있다. 무궁화 3호는 이미 설계수명이 다된 상태에서 ABS에 매각됐다. 설계수명은 위성을 구성하는 각종 서브시스템, 부품, 소자들의 수명을 고려한 설계상의 위성수명을 이른다.
일각에서는 연료수명이 남아 있어 3호의 향후 수익가치가 1천억원대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지만 수리 비용, 사고 발생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통상 위성보유국들이 연료가 남아도 설계수명이 다되면 위성을 매각하는 것도 이같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 재판에 들어갈 경우, ABS가 무궁화3호의 연료수명이 다할 때까지 위성을 운용할 목적으로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아 재판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 중재를 거쳐 3호 위성이 다시 KT샛의 소유가 되더라도 이미 3호의 역할을 무궁화 5호, 6호가 하고 있기 때문에 별 활용가치가 없을 것”이라며 “수명이 다한 3호 위성은 연료가 없어질 때까지 백업용으로 운용되는 것 외에는 역할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석채 회장이 당초 순순히 물러났더라면 이 정도로 사태가 번졌겠느냐”며 “KT가 국가통신망 사업을 하고 있는 전략기업이긴 하지만 분명한 민간기업인 만큼 어느 정도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KT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카드로 활용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 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