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보는 시각에는 두 극단적인 시선이 있다. 하나는 "돈이 많으니까 예술을 하겠지"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을 하니까 돈이 없겠지"라는 선입견이다. 각 시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예술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필요한 생각들이다.
사실, 현재 계층별 소득의 양극화는 예술가 사회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특히, 그런 경향은 젊은 작가 세대일수록 심화된다. 젊고 어린 작가일수록 예술 활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돈’이다. 그것은 젊고 어려서 감당해도 된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다. 재료값과 작업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 생계 유지는 가능하지만 작업할 체력과 시간이 없어져 버린다. 반대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 생계 걱정에 작업을 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이뤄지는 구조다.
어찌어찌해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 예술가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함께 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회적 현상에 가로막히는 것이 현재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주목할 만한 정책 중 두 가지가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기금’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주관의 ‘예컨대 ('예술가와 컨설턴트의 대화' 줄임말) 프로젝트’다.
최근, 예술인복지재단은 창작지원기금 신청을 이번달 29일까지 접수한다는 발표를 했다. 아르코의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올해 말이면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근 몇 년간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기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작년까지만 해도 그 선정 기준과 준비 서류가 복잡하고, 서류를 통해 증명해야 하는 내용 또한 이른바 "거지 증명을 하라는 얘기냐" 소리가 나올 정도로 까다롭고, 예술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느 정책에서나 발견되긴 하지만, 정책을 이용해 부수입을 챙기는 여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작년, 배우였던 고 김윤하와 판영진 씨의 사망을 계기로 그 기준이 완화됐다고 하는데, 변경된 기준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24일 한 매체는 ‘예컨대 프로젝트’에서 발표된 논문의 연구 결과를 빌어, 청년 예술 창업가 중 절반이 한 달 50만 원도 벌지 못한다는 보도를 했다. 그 보도는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 창업을 두고 겪는 근본적인 고민이 경제적 수익과 예술의 가치를 지키는 행위 사이의 간극이며, 이런 고민으로부터 소극적 사업 태도 등이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슈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반응들이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예술이냐",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데?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세금을 축내려 드느냐"는 핀잔이다. 이런 반응들은 ‘고귀한 예술과 천한 돈’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을 하며 고귀하게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퍽퍽한 삶을 살며 자기가 낸 세금을 주기는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특히 연령이 어린 세대의 작가일수록 그리도 고고한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현재, 동시대 예술의 화두는 ‘소통’이다. 그만큼, 예술가들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고 깨닫고 있으며, 예술에 대한 정의 또한 예전과는 달리하고 있다. 더불어 자본에 대한 인식 또한 과거와는 다르다. 그들은 예술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보도가 지적한 예술 창업의 근본적인 고민은, 경제적 수익과 예술적 가치의 간극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창의성과 대중 취향의 간극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현대의 젊은 예술가들은 그 간극을 없애기 위해 분투한다. 현재,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류 문화 콘텐츠들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뿌리에는 1차 생산자의 역할을 하는 예술이 있다. 그 뿌리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자 하는 것은 욕먹을 일도, 죄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