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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MOU(양해각서) 체결’ 자랑하는 나라

의미있는 합의, 10%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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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16.05.05 07:44:14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전(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에스피나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MOU 체결 보도자료가 자주 나오는 스타트업은 일단 의심하라”

벤처투자업계의 오래된 금언이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2000년대 초반 IT벤처열풍이 한참 불 때만 해도 고만고만한 기업들이 ‘A사와 B사가 이런저런 사업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리는 일이 많았다. 

이들 초창기 스타트업·중소벤처기업들은 인맥과 학맥을 총동원하여 쟁쟁한 대기업들과 큰 의미없는 내용의 MOU를 체결하는데 열을 올렸고, 대기업이 안되면 중소기업이라도, 그게 안되면 자신들끼리라도 그렇게 했다.

일단 MOU를 체결해두면 이후 아무런 후속작업이 없어도 문제삼을 이가 없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만에 하나 MOU 자체가 흐지부지 되어 항의하는 전화가 와도 “양측이 논의해보았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도의 말로 백지화하면 그만이었다.

MOU 문서의 하단에 통상 포함되는 “위 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문구 덕분에 가능한 상황이다.

MOU는 내세울 거 없는 무명기업이 손쉽게 언론에 기사 한 줄 올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었고, 상대 대기업의 명성과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빌릴 수 있는 일종의 마케팅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MOU 보도자료를 남발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폐업, 부도, 배임, 횡령, 사기 같은 불길한 뉴스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안좋은 사례들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벤처투자업계는 ‘의미없는 MOU 자랑질’을 하는 스타트업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지난 2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 기간 동안 양국 정부 및 민간 기업들이 66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예상 수주액이 약 456억 달러, 한화로 약 52조원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발표했다.

짧은 방문 기간 동안 얻어낸 성과치고는 엄청난 금액이다. 아니나다를까, 곧바로 정부가 발표한 수많은 합의 중 실제 법적 효력이 있는 합의는 가계약 2건, 일괄정부계약 1건, 업무협력 합의각서 3건 등 6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의미있는 합의는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자원외교’ 관련 MOU 96건 중 본 계약까지 이어진 사례는 16건에 불과했다. 

이쯤되면 정부가 발표하는 MOU들의 실현 가능성은 10%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렇다면 앞으로 청와대 브리핑을 이렇게 바꾸는 건 어떨까?

“이번 방문에서 OO건의 MOU가 체결됐는데, 그간의 사례를 감안하면 약 OO건의 MOU가 현실화될 전망이며, 그에 따라 예상 성과는 OOO원으로 추정된다.”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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