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듣는 건 중요하다. 7일 오전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천종호 판사는 “20년 판사 생활과, 지난 8년간의 청소년 재판 전담의 경험으로 말하건대, 부산-강릉 사건에서 놀라운 건 폭행 자체보다는 소녀들이 폭행-범행 관련 사진을 SNS에 올려 널리 알린 점”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그는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소년범을 성인과 동등하게 처벌하려면 선거 연령도 낮춰줘야 하고 미성년자에 대한 술 판매 금지 등도 풀어줘야 맞다”고도 지적했다.
사실 청소년에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교통비 등에 적용되는 ‘청소년 할인’ ‘학생 할인’ 등이 그렇다. 성인과 동일하게 청소년을 처벌하자면, 이런 ‘청소년 할인 특혜’ 역시 없애야 형평성이 맞다. 성인과 청소년의 구분 자체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천 판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청소년 사이에 이런 폭행 사건은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없었던 게 아니라 최근에 놀라운 것은, SNS에 폭행 장면을 겁도 없이 올리면서 범죄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게 특징이라는 지적이었다.

▲소년법 폐지 논쟁을 다루는 TV 화면.(이미지=채널A 캡처)
폭행 현장을 알리는 건 SNS 만능 시대의 수확이런가
과거에는 일반인이 자신을 알릴 수단이 없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면 기존 언론을 통해야 했는데, 기성 미디어의 높고도 높은 벽은 ‘높으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은 그냥 높으신 분들이 정해서 틀어주시는, ‘공개 허용 정보’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7일 JTBC의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황석영 작가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을 일부 증언해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냈다. 출연진 중 개그우먼 박지선이 “어머니에게 ‘1980년 5월에 엄마는 뭐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서울에 있었다’고 해서 어쩌면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냈다”고 말했지만 불과 37년 전만 해도 인터넷도, SNS도 없었기에, 군부가 언론의 목줄기만 틀어쥐고 있으면, 광주에서 수백 명이 자국 군인의 총칼에 죽어나가도 알 길이 없었던 게 한국이란 나라였다.
1인 미디어 시대, 또는 인스타그램 시대에 걸맞게, 요즘 젊은이들은 별난 음식이 아닌데도 ‘식전 촬영’을 빼먹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이 먹는 음식을 일일이 SNS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라는 궁금증을 지울 길이 없다.
이리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이제 열심히 공부해 출세하는 시대는 끝났다. 2015년에는 연세대 사학과의 한 졸업생이 교정에 “연대 나오면 모하냐… 백순데…”라는 연수막을 내걸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이른바 문-사-철로 불리는 인문 계열 학과 졸업자들은 원래 취직이 잘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배 세대에서는 연세대씩이나 나오면 취직은 할 수 있었다. 그런 시대가 이제 완전히 끝났으니 “나오면 모하냐”는 탄식이 배어나온 것이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년법 폐지 청원 운동.
과거에는 명문대 졸업생을 비롯한 모든 한국인에게 ‘공부한 시간 = 돈’이란 공식이 통용되고 인정됐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취직 전에 1만 시간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시급 1만 원이, 1천 시간만 공부한 사람에게는 시급 1천 원이 적용돼야 맞다는 게 세상의 상식이었다. 이는 과거시험이라는 1천년 넘는 전통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유교 사회의 상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토익 점수가 1점이라도 높으면 그만큼 더 보수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공식은 거의 완전히 깨졌다. 돈을 잘 버는 학과 졸업생은 잘 벌고, 돈을 못 버는 전공의 졸업생은 돈을 못 번다. 있는 자(할아버지부터 부자인)와 없는 자의 분류는 거의 완전히 끝난 듯하다.
‘공부하면 돈’ 공식이 깨진 사회에서 고문만 당하는 청소년들
이렇게 ‘공부한 시간 = 돈’의 비례 공식이 깨진 세상에서, 중-고교에서 “저 선배를 봐라”며 학생들을 고문할 수 없게 됐다. 공부란 게 원래 힘들다.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는 침팬지는 단 5분도 고정자세로 앉아서 칠판을 쳐다보지 못한다. ‘동(動)물’이라는 게 원래 움직이게 돼 있기 때문이다.

▲후고 라인홀트 작 '해골을 든 유인원'. 동물에게 가장 힘든 게 정지동작이다. 그러나 인간은 몇 시간씩 멈춤 없이 모니터-스마트폰 앞에 정지자세를 취하면서 몸을 병들게 하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게 됐다는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 1만~1만 2천 년 전이라니, 그 이전 수십만~수백만년간 인간은, 지금의 침팬지처럼, 평시에는 뒹글뒹글 놀다가 사냥할 때는 전력 질주하는 게 삶의 패턴이었다고 한다. 편하게 뒹글다가 가끔 전속력으로 달리면 인간의 몸은 튼튼해지고 허리디스크가 생길 틈도 없단다.
하지만 인간은 직장이라는 데서 앉아 있기를 시작하더니 이제 20세기말~21세기초의 정보혁명 시대를 맞아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몇 시간씩 지치지도 않고 고정 자세로 PC 또는 스마트폰 모니터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생활을 만들어냈다. '호모 체어쿠스'의 탄생이랄까. 동물에게 불가능한 자세로 밤을 새기까지 하니 목병, 허리병, 어깨병이 안 생기면 오히려 이상하다.
학생들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공부한 시간 = 돈’의 비례 공식만 살아 있다면, 아무리 힘든 수업이라도 그 고통을 참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비례 공식을 디밀기에는 너무나 사정이 처참하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과 청춘에게 눈에 띄는 현상이 있으니 바로 ‘연예인에 환호하기’ 현상이다. TV 속 연예인은, 공부를 안 해도,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시시덕거리기만 해도 돈을 억수로 잘 번단다. 연예인은 유명한 사람이다. 이래서 새로운 공식이 나왔으니 그게 바로 ‘유명해진다 = 돈 잘번다’ 공식이다. 유명해진 인사의 대표가 연예인이니 연예인을 동경하고, 연예인이 아니라도 그저 유명해진(그게 설사 악명이라도) 사람이라면 무조건 존경-동경하고 보는 현상이다.

▲"눈동자 가는 곳에 돈 따른다." 인터넷 시대의 경제를 '주목경제'로 풀이하는 프레젠테이션 현장.(사진=Louisa Mac. 출처=플리커)
인터넷-모바일 시대의 경제 특징을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로 풀이하는 논의도 있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서로 봐달라고 경쟁하는 시대에, 눈길을 받는 콘텐츠가 승자다. 승자에겐 돈이 따라온다. 아프리카TV에서 돈이 된다는 ‘먹방’이 대표적이다. 예쁜 여자라서 주목을 받든, 아니면 많이 먹어서 주목을 받든, 주목만 받으면 돈이 된단다. 그러니 청춘들이 SNS에 밥 사진이든, 범죄 현장 사진이든 마구 올리면서 “우리, 이거 SNS에 올리면 이제 유명해지는 거냐?”는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천 판사의 궁금증, 즉 ‘왜 범죄 현장사진을 공개하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듯 싶다.
결국 무서운 시대다. 학교는 그 토대가 저 아래쪽부터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어른들은 그저 “옛날 나는 안 그랬어”라는 소리를 아직도 해대고 있다. 그리고 SNS 광풍 시대에 아이들은 사진만 올리면 뭔가 해결될 듯이 사진-동영상을 찍어올리고 그걸 보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다.
한국 교육의 특징은,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잠시 경험한 바로는, 미국의 강의실에서는 선생-교수의 목소리와 학생의 목소리가 잘 섞인다. 수업 중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을 교사가 죄악시하지 않으며, 대학에서도 세미나식 수업 덕에 학생들이 단상에 자주 올라간다. 한국에선 괜히 잘못 질문하면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찍혀서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지기 십상이다.
질문하는 사회-학교였다면 세월호의 “가만히 있으라” 가능했을까
올해 2월 나온 책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 (중략) 퇴선을 유도할 수 있는 시간대에는 어느 누구도 ‘지금 승객은 어떠하냐’고 묻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지금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는데 왜 나오라고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도 지시도 하지 않은 채 그 시간이 지나버렸다.(186쪽)
질문을 죄악시 하는 사회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게 정답이다.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 현장은 시끄럽다. 질문하려는 기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청와대 기자회견은 조용하다. 아예 질문 순서를 봉쇄하는 대통령도 있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질문자 없어요?”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어 정적만 흘렀다는 괴기담도 있다. 기자란? 대중을 대신해 묻는 사람이다. 잘 묻는 게 잘하는 기자다. 질문은 답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후지면 답변도 후지다. 질문이 정교하고 정곡을 찌르면 기막힌 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질문이 없는 기자라니….
부산-강릉 여중생 폭행 사건이 공개되자 대번에 “청소년이라고 봐주는 소년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불같이 일어났다. 물론 아무리 소년이라도 극악한 범죄에는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을 당장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은 아무런 보장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하루 12시간 이상을 고정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고문을 당하고 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폭력적이기 쉽다. 고문에 대한 반성 없이 폭력만을 ‘폭력적으로’ 처벌하자는 게 과연 합당한 해결책인지 의심된다.

▲지난 8월 17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맞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위해 손을 드는 기자들. 청와대 안에서 오랜만에 행해진 '질문 손 흔들기'였다.(사진=청와대)
흉포한 폭력을 휘두르고 참혹한 폭행 현장을 SNS에 마구 올리는 청소년들을 바로잡으려면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만히 있어라"는 명령 아래 진행되는 그 긴 수업 시간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지 △그 긴 수업 시간의 목적이 명문대라면 도대체 명문대 나와도 취직도 못하는 현상을 어쩔 건지 △‘공부만 하면 돈 잘벌어’ 공식을 이제 폐기하고 독일에서처럼 중학교 저학년 단계에서 ‘이 아이는 대학 갈 아이니 인문계 고교를 보내 오래도록 공부하게 만들고, 저 아이는 취직하는 게 좋으니 기술계 고교만 졸업시키고 사회로 내보낸다’고 결정할지 △연예인 되기만을 유일한 출구로 마치 미국 흑인 슬럼가 아이들처럼 꿈꾸는 현상을 어떻게 풀어갈지 등에 대한 종합 대책이다.
이렇게 어려운 과제는 미뤄둔 채 그냥 “잘못하면 초등학생이라도 사형시킨다”는 법안을 내놓는 것을 진정한 해결책이라 생각하는지, 이건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한국적 현상은 아닌지…라는 의심이 든다.
질문이 바르면 정답이, 질문이 빗나가면 오답 나오는데…

한때 한국인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엄청하게 증가했다는 뉴스가 나와 사람들을 놀래켰다. 10년 전에 10건이었는데, 지금은 1천 건이라면 발병이 100배 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전에는 안 하던 갑상선 검사를 병원들이 마구 하면서 ‘발견량’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절대 수치의 증가가 아니라, 발견의 증가다. 청소년 폭력에 대해 천 판사는 “절대 건수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단지 SNS를 통해 눈에 확 띄게 된 게 달라진 점이라니 갑상선 암의 폭증과도 비슷한 현상이다.
질문 없는 사회는, 질문을 만드는 법도 잘 모른다. 질문이 잘못되면 대답도 어긋나게 나온다.
중국의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던 ‘화폐전쟁’ 시리즈 저자 쑹훙빙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의 핵심은 관례에 얽매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의 요지가 정확하지 못하면 내실있는 답변을 기대하기 어렵다.('화폐전쟁 2' 508쪽)
질문을 권장해 제대로 묻는 사회, 질문 만드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학교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질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