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발(發)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에 대한 전향적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가 주최한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인터넷은행에 대해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 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은행법에서는 재벌(기업)의 사금고화를 차단하기 위해 비금융사가 금융사를 소유하는 것을 엄격히 막고 있는데 이게 은산분리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지분을 4%(의결권 미행사 시 10%)로 제한하고 있는 것.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카카오뱅크의 각각 설립주체인 KT와 카카오도 이러한 은산분리제도를 적용받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에 한해 비금융주력자인 기업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에서도 꾸준히 은산분리 완화를 적극 주창해 왔다. 이유인즉 당초 인터넷은행은 ICT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출현시키기 위함을 목적으로, 은산분리 완화를 전제조건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당국이 제반사항을 마련해 놓지 않은 채 무리하게 서둘러 인터넷은행을 출현시켰다는 비판도 여기서 나온다. 그렇지만 참여한 사업자는 무슨 죄인가. 수습은 해야겠는데 그동안 여의치가 않았다.
국회에는 지난 2016년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기업의 주식 보유한도를 현재 4%에서 34% 혹은 50%까지 대폭 확대토록 하는 관련 제·개정안이 5건이나 제출돼 현재 계류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에 반대했고 여당이 돼서도 외면해 왔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원칙적으로 은산분리를 강조하면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여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몰린 탓도 있다.
실태를 보자. 2017년 말 인터넷은행은 적자를 기록했다. 초기투자 부담이 따르는 신설은행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인터넷은행은 은산분리라는 족쇄에 발목이 잡혀, 설립주체인 ICT기업이 적극적으로 경영을 이끌고 나가기 어렵고, 무엇보다 증자 등 자본 확충에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이에 사업자들은 은산분리를 풀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를 벗지 않으면 실패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에 이은 3호·4호·5호 등 2차 추가 사업자 모집은 언감생심이다.
일단 정부에 의해 탄생했으나 제도적 기반 미비로 민간 사업자가 피해를 보면 안 된다. 물론 이를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설립목적에 부합하게 인터넷은행에 대한 IT기업의 지분 보유한도를 상향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인터넷은행에만 한정해 특혜를 주는 이유다. 사정은 어떨까. 먼저 인터넷은행 출현으로 서민층의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부르짖었지만 한국은행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인터넷은행 가계신용대출 차주 중 고신용(1∼3등급) 비중은 96.1%였다.
국내은행(84.8%)을 상회하는 반면, 중신용(4~6등급) 차주의 비중은 3.8%로 국내은행(11.9%)에 비해 낮다. 인터넷은행이 취급한 보증부대출(공적기관 보증)을 포함할 경우, 중신용 차주의 비중은 이보다 높아질 수 있겠지만, 도입 취지에 어긋나고 이대로라면 시중은행과 별반 차별성이 없다.
또한, 인가 과정에서의 의구심도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의 경우 자격 미달로 탈락을 했어야 했지만 금융당국이 심사기준을 변경해 허가를 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통해 “케이뱅크가 인가 과정에서 특혜 논란에 휘말리고 아울러 자본금 부족 문제 등의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케이뱅크가 은산분리 완화 등에 기대지 말고 자체적으로 국민이 납득할만한 발전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당국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밝히고 있으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눈초리가 존재한다.
각설하고, 인터넷은행은 지난 2001년 SK·롯데 등 대기업과 벤처회사가 공동으로 설립을 추진한 바 있었지만 이때에도 은산분리 규제 등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무산됐다. 이어 2008년에는 인터넷은행의 인가 근거를 ‘은행법’에 마련하는 방안이 논의됐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그러다가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4년 만에 은행업 신설을 인가해, 2017년 두 개의 인터넷은행이 드디어 영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금융의 건전성·공공성확보 및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었던 은산분리가 이제는 인터넷은행의 활성화에 걸림돌로 치부되고 있는 형국이 됐다.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이를 허물려고 할 때는 합당하고 충분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사회적 함의를 끌어내기 위해선 “왜? 그래야만 하는지” 먼저 설득력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