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디지털카메라업체 올림푸스가 한국 카메라 사업 철수를 공식 발표했다. 2000년 국내 시장에 진출했으니 20년 만의 일이다.
다음날인 5월 21일에는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 지유(GU)가 국내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중단하고 유니클로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판매한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한국에 진출했으니 1년 9개월만의 사업 철수다.
일주일 뒤인 5월 27일엔 일본 의류업체 데상트의 한국지사 데상트코리아가 주니어 스포츠 브랜드 ‘영애슬릿’의 단독 매장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5월 28일에는 일본 자동차업체 닛산·인피니티 브랜드를 국내에 판매해온 한국닛산이 2020년 12월 말까지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일본산 맥주, 의류 등 소비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일본 불매 운동과 코로나19의 더블 쇼크로 국내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쯤되면 지난해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핵심소재 3종의 수출을 제한하고,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불붙은 ‘NO JAPAN(노 재팬)’ 일본 불매 운동이 약 1년여 만에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닥 녹록지 않다.
우선, 올림푸스의 카메라 사업 철수는 일본 불매 운동보다는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한 디지털카메라의 수요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미 올림푸스는 국내에서 의료내시경, 복강경, 수술장비 등 의료기기와 현미경, 산업내시경 등 산업용기기 시장에서 매출 80%를 얻고 있었다. 카메라 사업 철수가 올림푸스의 철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DSLR, 미러리스 등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여전히 캐논, 니콘,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의 각축장으로, 한국 기업의 참여는 전무하다.
유니클로 역시 지유 브랜드의 사업 축소일뿐, 완전한 철수는 아니며 유니클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감소했을 뿐 국내 시장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데상트 역시 마찬가지다. 데상트코리아는 영애슬릿 단독 매장 47개의 영업만 중단하고 기존 데상트 매장에 입점시킨 영애슬릿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하며, 이같은 복합 매장을 오히려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유니클로, 데상트 둘다 일본 불매의 피해를 어느 정도 받기는 했지만, ‘전면 철수’까지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
닛산·인피니티도 상황은 유사해보인다. 애초부터 닛산과 인피니티는 국내 판매량이 토요타, 혼다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상황이었는 데다 일본 불매 운동으로 인해 더 줄어든 건 맞다.
하지만 닛산은 한국 시장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에서도 사업을 철수하는가 하면,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장과 인도네시아 공장도 폐쇄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불매 운동의 영향보다는 글로벌 규모의 구조조정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반면, 일본차는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차가 일본 시장에서 발도 못붙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한달 동안 국내에서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렉서스 727대, 토요타 485대, 닛산 228대, 혼다 169대, 인피니티 63대 등이다. 상위권을 독점한 독일차 브랜드에 비해 부진했지만, 전월 대비로는 렉서스 57.7%, 토요타 57.0%, 닛산 12.9%, 인피니티 12.5%, 혼다 –26.8% 등 대부분 증가세를 보였다.
게다가 최근 닛산과 인피니티가 철수를 발표한 이후로는 렉서스, 토요타, 혼다 등 다른 일본차 브랜드들이 신차 발표, 미디어 시승회 등 공격적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닛산과 인피니티의 재고 처분 떨이판매가 약 1000만원 가량의 할인 혜택 덕분인지 순식간에 품절됐다는 소식은 씁쓸할 따름이다.
그나마 일본 불매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됐던 의류, 자동차 분야에서의 상황이 이렇다. 소재, 부품은 물론 각종 전문가용 장비, 비디오게임기와 게임타이틀, 오토바이, 자전거 부품, 골프용품 등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분야는 여전히 많고 요지부동이다. 소소한 성과에 만족하며 풀어질 것이 아니라 다시 긴장의 끈을 조여맬 타이밍이라는 얘기다.
한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지난해 8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회담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현 방위상)은 국내 언론사 취재진의 카메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뭐죠? 캐논이네. 그건 니콘이고….” 이런 조롱이 반복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CNB=정의식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