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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사위’ 그래도 ‘상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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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21.08.26 11:31:57

국회 전경. (사진=CNB포토뱅크)

‘상왕’이자 ‘게이트키퍼’로 불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단한 위세는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본회의 상정을 앞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지만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일단 이 개정안은 소관 위원회의 본회의 부의 요구 가능 기간을 현행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고,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의 범위를 벗어나 심사할 수 없도록 함이 골자다.

그렇다면 개정 취지는 제대로 반영이 된 것인가. “아니올시다”에 무게추가 기울어진다.

그동안 법사위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현행법에 따라 각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법률안들은 법사위에 회부돼 다시 한번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토록 돼 있다.

입법절차에 있어서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는 관문장인 법사위를 통과해야만 하는 구조다. 그러하기에 타 상임위원장보다 법사위원장 자리는 상위체로 그 격을 달리한다.

문제는 폐해가 많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부각되고 있는 형편이다. 체계·자구 심사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내용까지 손보고, 소관 위원회에서 의결된 법안들이 법사위에 장기간 계류돼 신속성·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를 들자면, 지난 19대 국회(2013년 5월)에서 통과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안’의 경우 당초 소관 위원회인 환경노동위는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의결했었다. 하지만 법사위가 과징금 부과기준을 ‘사업장매출의 5%’로 하향 조정시켜 그대로 본회의에서 통과된 사례가 있다.

또한, 20대 국회(2017년 12월)에서 통과된 ‘세무사법 개정안’의 경우 기재위에서 2016년 11월 30일 의결됐으나 2017년 11월까지 1년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채 장기 계류된 바 있다.

이처럼 막강한 역할을 자처하기에 이를 오남용해 법안을 지연시키고, 때로는 악용해 정쟁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이에 국회에서는 법사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폐지토록 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한뿌리 같으면서 묘하게 비틀어져 있다.

이는 지난 7월 23일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원내대표가 전·후반기 법사위원장을 나눠 맡기로 합의하면서 나온 후속 조치이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뿐이다.

즉, 체계·자구 심사 중인 법률안에 대한 소관 위원회의 본회의 부의 요구 가능 기간을 현행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고,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의 범위를 벗어나 심사할 수 없다는 사항만 속전속결로 처리됐을 뿐이다.

당연히 군소정당은 끼어들 틈이 없었고 법사위 개혁을 추구하는 타 개정안들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법안 논의시 국회운영위에서는 양당 간사들이 앞서 합의된 내용으로 제시한 법안만을 가지고 논스톱으로 처리했다. 근본적인 악습을 없애기보다는 정치적 이해에 따른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법사위원장을 나눠 먹기로 하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법사위 권한을 축소시키겠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제시할 뿐이다. 핵심은 이 법을 통해 “실제 권한이 축소돼 과거의 폐단은 사라질까”로 모아진다. 이는 분명 따져봐야 한다.

언뜻 보기에 개정안을 통해 법사위 월권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과연 그러할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속을 들여다보자. 먼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기한을 현행 120일에서 60일로 줄였지만 정작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앞서 견제 장치로 2012년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따라 법사위가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이유 없이” 120일 이내에 마치지 못한 경우 소관 상임위가 해당 법안의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60일로 단축만 됐을 뿐 “이유 없이” 부문은 그대로 박혀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라는 것은 가져다 붙이기 퍽이나 쉽다는 점이 함정이다. 지연 사유는 무척 광범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가 적용돼 60일이 넘었다고 해도 바로 본회의에 올라갈 수 없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일단 법률안 소관 위원회 위원장이 간사와 협의해 이견이 없어야 하고,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지만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후 의장은 30일 이내에 본회의 부의 여부를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고, 기한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처음으로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무기명투표로 부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현재까지 적용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즉,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이유 없이” 조항을 제거해 60일 이후에는 지체 없이 본회의에 부쳐져야 한다. 그러나 건드리지 않았다.

더불어 심사 범위를 체계·자구로만 한정했지만, 이 또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여기서 체계 심사는 ▲법률안 내용의 위헌 여부 ▲관련 법률과의 저촉 여부 ▲자체조항간의 모순 유무 및 법률형식을 정비하는 것이며, 자구 심사는 법률용어의 적합성과 통일성을 심사해 각 법 간에 용어상의 통일을 기함으로써 법률문언을 정비하는 것이다.

트집을 잡으려면 끝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권한이 줄어들었는지 의문이다.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결론적으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점에 한 표를 던진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고전적 행태가 되풀이됐다. 그들만의 악습 리그는 포장지만 세련되게 바뀔 뿐 내용물은 그대로인 채 끝나지 않게 지속해 이어진다.

국민의 열망 속 변화되지 않는, 개선되지 않는 국회는 바라지 않는다. 시급히 처리돼야 할 민생현안법안이 법사위에 의해 “이유 없이(?)”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기존 법안 취지에 어긋나게 과하게 축소·왜곡돼서도 안 된다. 화근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법사위가 잘해왔다면야 이런 비판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겠는가 곱씹어 봐야 한다. 법사위가 법안 숙의 및 이견조정 기능을 통한 ‘운영의 묘’를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과거의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더 이상의 제약은 의미가 없다. 온전히 빼앗아야 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은 궁극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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