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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호 종료는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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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1.12.23 09:20:38

지난달 삼성전자가 경기도 화성시에 개소한 삼성 희망디딤돌 경기센터 시설을 관계자들(왼쪽부터 오병권 경기도지사 권한대행, 박학규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지원실 사장, 조흥식 사랑의열매 회장, 진석범 경기복지재단 대표이사)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보호종료아동의 사례들을 재구성했습니다.

나는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 본적은 있겠거니 짐작만 해본다. 그러나 기억에 없다. 그들은 나를 봤을 것이다. 동그랗고 까만 눈을. 암흑처럼 어두운 내 눈에도 그들이 담겼었겠지만 잔상조차 없다. 우리는 닮았을까?

사람들은 간혹 묻는다. “괜찮냐?. 그럴 때마다 난감했다. 슬픈 척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감정조차 없다. 부모를 향한 분노도 그리움도. 나에게 부모라는 형상은 없다. 증오를 하려 해도 실체가 있어야 한다. 기억에 남았어야 그 순간을 떠올리며 화를 내든 할 것 아닌가. 나를 왜 버렸냐고.

운이 좋았다. 조금 더 커서 버려졌더라면 거리를 전전했을 지도 모른다. 보육원은 동그랗고 까만 눈을 가진 나를 품었다. 따뜻했다. 밥도 제 때 먹였다. 연말이면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옷이며 과자 따위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어쩌다 한번 보는 그 사람들은 노래도 불러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줬다. 그때 기분이 어땠냐면, 그저 따뜻했다. 매년 겨울을 기다렸다. 따뜻할 거란 걸 알기에.

좋다 생각한 운도, 따뜻한 보살핌도 영원하지 않았다.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었다. 18살이 됐을 때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제 그만 나가야한다고 했다. 다 컸으니 시설은 더 이상 나를 품을 수 없다며 자립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남 부럽지 않게 먹이고 관심으로 지켜봐줘서 잘 컸다. 또래 보다 머리 하나는 솟아 있을 정도로 장성했다. 그러나 커다란 신체 안의 나는 아직 작다. 세상에 나가기엔 너무도. 기약 있는 이별은 온전한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왔다.

큰돈이 생겼다. 만져 본적 없는 액수다. 정착금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남들 다 입는 ‘메이커 패딩점퍼’를 살까도 했다. 허영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당장 잘 곳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으로 갔다.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조금이라도 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막무가내였다. 걷고 또 걷고 묻고 또 물으며 겨우겨우 방을 구했다. 보조받은 돈을 탈탈 털어 보증금에 부었다. 월세 20만원은 다음 달부터 내기로 했다. 집주인은 지금 사는 사람 계약기간이 남아있으니 사흘 뒤에 오라고 했다. 오늘 잘 곳이 없었다. 아까 봐둔 곳으로 갔다. 지하철역 앞에 박스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 한명 겨우 들어가는 크기의 박스에 겨울잠 자듯 숨죽이고 누워 있던 사람들 곁으로 갔다.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옆집을 훔쳐봤다. 두려웠다. 관 같은 박스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숨은 쉬는지, 자는 동안 비가 내리지는 않을지. 오늘의 마지막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았다.

시설을 나올 때 라면 박스 두개에 모든 짐을 담았다. 고작 그뿐이었다. 이사도 간편했다. 18세, 성인이 된 나는 보육원에서 월세방으로 적을 옮겼다. 그렇게 반년을 살았다. 어느 날 집주인이 방을 빼라고 했다.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줄 알았다. 주인은 보증금은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법이 그렇다고 했다. 무서운 말이었다. 법. 집주인은 입가에 거칠게 일어난 각질을 쓸며 어려운 용어들을 썼다. 잘못됐다는 걸 아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지도 몰랐다. 나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세상 사는 법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했다. 사람 사는 길 알려줄 어른, 잘못된 걸 보고 대신 펀치를 날려 줄 어른. 보증금으로 사기치는 어른이 아니라.

만 18세에 강제 자립을 해야 했던 보호종료아동들의 사례를 짚어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댈 존재, 어른이다. 한 울타리만 벗어나면 정글인데 사회는 정글도(刀)조차 없이 헤쳐나가라고만 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강제적 자립을 종용했다. 매몰찬 시각이었다.

차가운 시선에 온도가 상승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보호종료아동의 막막함을 달래는 제도개선과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해야 했던 것에서, 본인이 원하면 만 24세까지 시설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보건복지부는 매달 30만원씩 주는 자립수당을 보호종료 3년에서 5년 이내로 기간을 늘려 지급하기로 했다. 최소한의 틀이 닦이고 있다.

많은 기업들도 금전적 후원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의 두 가지 방안이 눈에 띈다. 주거 인프라 제공과 멘토링이다. 2016년부터 500억원을 들여 전국에 '삼성 희망디딤돌' 센터를 짓고 있다. 센터는 가전제품, 주방용품, 가구 등을 구비해 보호종료아동들이 자립 준비에만 집중하도록 돕고 있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경기센터 자립준비 청소년들과 짝을 이뤄 취업, 학업, 고민상담 등을 통해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후자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연간 보호가 종료되는 아동은 2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에게 담장하나 건너 세상은 안개 자욱한 시계제로 세계나 다름없다. 밖으로 나왔을 때 사회가 해줄 일은 한발 한발 앞으로 이끄는 것이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아이들을 내보내기 전에 먼저 자문(自問)해야 한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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