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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다의 부활①] ‘버려질 운명’…옷을 되살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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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4.09.13 09:24:41

패스트패션 유행에 의류폐기물 증가
칠레 ‘옷의 산맥’은 우주에서도 보여
버리지 않고 다시 쓰려는 노력 필요
새 활용 브랜드 코오롱 FnC ‘래코드’
과정 보니 수작업으로 새롭게 만들어

 

서울 한 번화가 의류 매장에 옷이 진열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제공)

가히 아나바다 운동의 부활이다. 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 쓰자던 1990년대 그 캠페인 말이다. 시간이 흘러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거센 친환경 열풍이 과거의 캠페인을 소환했는데, 기업들이 최근 공들이는 ESG 경영과 맞물려 더욱 강력해졌다. 네 가지 행동 지침 중 현재 가장 각광받는 구호는 ‘바’와 ‘다’로, 바꾸고 다시 써서 나온 결과물들이 놀랍다. 자칫 쓰레기가 될 뻔했던 원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가치를 얻었는지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산만하다는 건 비유가 아니었다. 지난해 미국 위성 사진영상 업체 ‘스카이파이’가 공개한 사진에는 분명 산이 담겨 있었다. 우주에서 칠레 사막을 찍은 것인데 높게 솟구친 무언가가 크게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산맥과도 같은 이 지형은 알고 보니 ‘옷맥’(衣脈). 버려진 옷들이 하나의 산줄기를 이뤄 일으킨 착시였다. 총 면적은 6.5헥타르(ha), 축구 경기장 9개에 해당하는 방대한 규모다. 칠레는 중남미 최대 중고 의류 수입국가로 매년 약 6만톤을 들인다면 이중 40%는 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의 진위를 알게 된 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 ‘옷의 무덤’. 산더미처럼 쌓인 옷이 거기서 언제 올지 모를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정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매년 늘어나는 의류폐기물에 골머리를 앓는 나라가 많다. 대량 생산을 앞세워 세계적 유행이 된 패스트패션의 영향이 크다. 의류를 많이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에 파니 아껴 입는 사람이 줄었다.

대량 생산은 대량 소비로 이어지고 그만큼 쉽게 버리면서 비극이 발생한다. 옷에 쓰이는 합성섬유는 분해되는 데 최대 200년이 걸린다. 썩는 시간은 더딘데 자꾸 버리니 그대로 쌓여서 문제, 매립이나 소각을 해도 환경에 유해해서 문제. 이래나 저래나 난제다. 풀어갈 길을 찾아야 한다.

 

코오롱FnC 래코드와 KT가 폐기 작업복 선순환 등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있다. (사진=코오롱FnC)

 


 

해체와 재조합…새 활용은 지난한 작업



의류 회사가 먼저 골몰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작자이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새 활용’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사례가 있다. 지난 2일 접점 없어 보이는 두 회사가 손을 잡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이 전개하는 업사이클링 기반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통신사 KT다. 버려지는 KT의 현장 작업복을 카드지갑, 슬리퍼, 키링, 티셔츠 등으로 되살리는 것이 목적. 그동안 매년 이 회사 작업복 4500여벌이 사용 기한 만료로 폐기됐다. 앞으로 그냥 버리지 않고 다른 형태로 쓰임새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 과정이다. 어떤 절차를 밟고 소생되는가. 어떻게 바꿔 쓰고 다시 쓰는가. 지난 2012년 ‘새 활용’을 목적으로 태생한 ‘래코드’의 노하우를 보면 그 단계에는 한 땀 한 땀이 있다. 지난한 시간을 거친다.

코오롱FnC 브랜드의 판매되지 않은 3년차 재고가 되살릴 대상이다. 3년이 넘으면 폐기되는 것들이다.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사람이 일일이 의류의 구성물인 앞판, 등판 같은 큰 부분부터 카라, 단추, 지퍼 등 작은 요소까지 해체하고 재조합한다. 부속물을 셔츠 주머니 같은 디테일에 접목하거나 전면적으로 뒤섞어 전혀 다른 옷가지로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재료를 모으고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닿다보니 작업 시간이 길 수밖에. 이처럼 의류 새 활용은 막연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작업이다.

협업도 활발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글로벌 브랜드 타미 진스와 재고 의류 등을 활용한 제품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 동종 계열뿐 아니라 기아의 신차 전시 행사에서는 자동차 부속품과 의류 부자재를 혼합한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쉽게 버리지 않는다는 건, 반대로 오래 간직한다는 뜻이다. 지난 2022년 래코드가 수선·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박스 아뜰리에’를 강남에 연 이유다. 매장에 전문가인 ‘리메이커’가 상주하며 일반적인 수선은 물론, 고객 요청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가령 바지를 앞치마로, 셔츠를 에코백으로 탈바꿈하는 식.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지 않아도 의류 새 활용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빈티지가 유행했을 때만 해도 옷을 깁거나 절개해서 개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다”며 “요즘은 수선 도구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유튜브에도 리폼 관련 영상이 많으니 이를 활용하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옷을 짧게 입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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