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가 ‘4개 변수’ 시뮬레이션 해보니
어느 하나 호반그룹 측에 유리한 게 없어
지분구조·자금력·우호세력…모두 한진 편
당장은 넘을 산 높아 장기전 돌입 가능성
호반그룹의 한진칼(대한항공 지주회사)에 대한 공격적 행태가 지속 되면서 한진그룹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호반과의 관계에 있어 동병상련(同病相憐) 처지인 LS그룹과 동맹을 구축하는 등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과연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지킬 수 있을까? CNB뉴스가 네 가지 변수를 통해 앞날을 예측해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호반그룹 소속인 (주)호반과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지난 12일 한진칼 지분을 각각 0.05%, 0.96%씩 장내매수했다고 공시했다. 기존에 호반건설과 호반호텔앤리조트가 11.5%, 5.85%씩 갖고 있던 터라 이번 매수로 호반 측 지분이 총 18.46%로 높아졌다.
한진칼 최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의 지분은 현재 19.96%다. 양측의 격차는 기존 2.5%포인트에서 1.5%포인트로 줄었다. 호반이 턱밑까지 올라온 터라 조 회장으로서는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조만간 치열한 지분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에 한진칼 주가는 크게 출렁였다. 호반의 지분 매수 발표 전날(12일) 8만9200원(종가 기준)이었던 주가는 이틀(13~14일) 연속 상한가로 치솟아 2배 가까이 올랐다가 이후 다시 급락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호반그룹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호반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간의 합병 시너지 등 성장 모멘텀을 기대한 단순 투자 목적이며 다른 의도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호반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한진의 경영권에 관심을 뒀다고 보고 있다.
호반그룹 계열사인 호반건설은 지난 2022년 한진가(家)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던 사모펀드 KCGI의 지분을 인수하며 순식간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른바 ‘남매(男妹) 전쟁’으로 불렸던 치열한 경영 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이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미국 법무부가 합병을 최종 승인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의 자회사로 편입되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했다. 호반건설은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인 정황도 포착됐다. 호반은 한진칼 지분을 늘리기 위해 올해 초 재무적투자자(FI)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은 주기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도해왔는데, 이 고문이 보유 중인 지분을 매수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호반이 대한항공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다면 현재로서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크게 4가지 변수가 존재하는데 어느 것 하나 호반 측에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변수1 한진家 경영분쟁 가능성
우선 호반은 한진가(家)에 다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2019년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시작된 한진가 가족 간 갈등은 이듬해 산업은행이 장남 조원태 회장의 우군으로 등장하면서 일단락된 바 있다.
당시 산은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진칼을 도와 자본을 댔다. 산은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10.6%를 확보, 조 회장과 지분 공동 보유 계약을 맺었다. 산은이 조 회장의 백기사가 되자 조 회장과 대척점에 있던 조현아(조원태의 누나)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은 한진칼 경영권 도전을 포기했다.
이후 조 회장은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모친 이명희 고문, 여동생 조현민 사장과 ‘의결권 공동 행사’ 약정을 맺었다.
이런 배경에서 이 고문이 아들의 경영권을 흔들고자 호반에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해 보인다. 이 고문은 작년 8월과 9월 36만7535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하며 지분율이 2.68%에서 2.09%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의 매도였을 뿐, 호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변수2 산은 지분의 향배
두 번째 변수는 산업은행이다.
업계에서는 호반 입장에서 볼때, 산은이 한진칼 지분을 10% 넘게 갖고 있는 것이 나쁠 게 없다고 해석한다. 대한항공이 저비용항공사를 제외하면 유일한 국적기인 만큼 산은이 보유 지분을 계속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3자에게 매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누가 지분을 사가느냐에 따라 조 회장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산은은 “항공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기로 한 것이고, 그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매각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변수3 ‘조원태 지분 취약설’ 진실은?
세 번째는 조 회장 측 지분구조에 대한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의 지분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구조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조 회장 개인 지분은 5.78%에 불과하다. 모친인 이 고문(2.09%)과 여동생 조현민(5.73%) 한진 사장, 정석인하학원(1.9%), 일우재단(0.14%), 정석물류학술재단(0.95%), 대한항공 임직원 자가보험(2.27%), 대한항공 사우회(1.09%) 지분까지 모두 합쳐도 19.96%가 전부다.
하지만 이는 우호지분 등을 제외한 단순한 계산법이다.
NH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자사주를 사내복지기금에 처분한 것까지 포함하면 조 회장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20.79%까지 올라간다. 여기에다 델타항공 지분 14.90%, 산업은행 지분 10.58%, 기타 우호주주 등 지분을 모두 합하면 조 회장 측은 이미 50.12%의 지분을 확보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보유 중인 지분 구도를 고려하면 (호반 측과의) 지분 경쟁 가능성은 과장됐다”며 “델타항공의 경우 장기간 대한항공과 협력한 주요 항공사로 미주 노선에 대해서 JV(합작법인)를 운영 중이며 현재 협력 구조를 고려할 시 대주주 변경을 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설령 산은이 추후에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조 회장 우호 지분이 39.54%로, 호반그룹과의 격차는 여전히 2배 이상이다.
#변수4 호반의 ‘자금 동원력’ 어디까지
마지막 변수는 호반의 자금력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환경이 호반에게 우호적이지 않지만 막대한 자금력이 동원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호반건설의 지난해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711억원, 호반산업은 4751억원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현금비중이 상당히 큰 기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호반그룹은 건설업을 영위하는 호반건설의 비중이 가장 큰데,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며 갈수록 재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호반그룹 총수(호반건설 창업자)인 김상열 회장은 아파트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기지 않으면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 이른바 ‘90%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는 지금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는 신규투자를 막아 자금순환이 힘들게 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이는 게 방법이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이 유일무이한 국적항공사이다 보니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글로벌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작년 6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참여하려다 무산된 경우다. MBK의 회장을 포함해 CEO, 주요주주가 모두 외국 국적 보유자라는 점에서 인허가 주체인 국토교통부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 항공사업법 제54조에 따르면 ‘외국인이 법인등기사항 증명서상 대표자이거나 외국인이 법인등기사항증명서상 임원수의 2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법인’에 해당되면 인수합병시 국토교통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한진그룹은 LS그룹과 ‘반(反)호반 전선’을 구축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사는 최근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교환사채(EB) 인수 등을 통해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호반그룹은 LS전선과 호반그룹 계열사인 대한전선 간 법적 분쟁이 불거진 시기에 ㈜LS 지분을 대량 매입해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현재 양사는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도면 유출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향후 대규모 민사 소송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여러 주변 상황이 호반 측에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아시아나 인수전 당시 국토부가 외국계 자본의 참여를 불허한 사례로 볼 때, 호반이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며 “우호지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자체 자본력만으로 대한항공 경영권에 도전해야 하기에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회를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