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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프로젝트(7)] 北출신 기업인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개성 상인 3세대, 분단 장벽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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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2018.06.15 08:58:14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북한 출신 창업주를 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지 하루가 지난 13일 평양의 한 지하철역 신문 게시 코너에 뉴스를 보려는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면서 한반도 경제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다. 비핵화가 실현되고 대북제재가 해제돼 북한경제가 개방의 길로 들어설 경우,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CNB는 대북사업과 연관된 기업들을 기획연재하고 있다. 이번에는 최근의 해빙 무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북녘 출신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CNB=도기천 기자) 

선대회장 北에서 내려와 일군 기업
한반도 변화 주시하며 北 진출 채비
식품·제약 등 새로운 먹거리 가능성 

남북·북미 간 정상들의 성공적인 만남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북녘 땅에 고향을 둔 기업인들은 과거부터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에 앞장서 왔다. 이들은 고인이 되었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뜻을 물려받은 2~3세 기업인들이 향후 펼쳐질 남북경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로 여기에 해당되는 분야는 제약과 식품 쪽이다. 1세대 창업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던 해방 전후 시기는 소비재 위주의 경공업이 주를 이뤘고, 이런 바탕에서 기업을 일궈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07년 유한킴벌리 금강산 나무 심기 행사에서 남한 신혼부부가 북한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있다. 이 회사의 한국 대주주인 유한양행은 평양 출신인 고 유일한 박사가 설립했다. (사진=유한킴벌리)


우선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유한양행, 한독, GC녹십자, 일성신약 등이 주목된다.  

유한양행을 창립한 고 유일한 박사는 평양 출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미국 육군의 OSS요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건강한 국민이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사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약품을 수입해서 사용할 정도로 국내 의료환경이 열악했다. 유 박사는 민족을 위해 약품 개발에 매달렸고, 1933년 자체 제작 제품 1호 ‘안티푸라민’을 만들어냈다. 

이후 중국과 북한 등지에 사업체를 두고 성장했지만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쪽의 자산을 모두 상실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유한재단을 세워 교육·장학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결핵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 생산에 힘입어 업계 1위(매출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한양행은 2006년 북한이 집중호우로 4000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자 한국제약협회를 통해 구호의약품을 보내는 등 음으로양으로 북녘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열사인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1999년부터 북한에 나무를 심어오다 2009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중단했다.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 북부지방산림청, 비정부기구인 생명의 숲과 협력해 1.1ha(1만1000㎡) 규모의 ‘화천 미래숲 양묘센터’를 준공했는데, 북한의 숲 복원에 이 시설이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독약품의 창업주 고 김신권 회장도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연합약품(한독의 전신)을 설립했다. 제약업계 최초로 1957년 독일 훽스트사와 기술제휴를 해 유명세를 탔으며, 이후 세계 유수 제약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문의약품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故 유일한 박사(왼쪽)와 한독약품 창업주 故 김신권 회장. (사진=각사 제공)


전쟁의 혹독한 경험, 사명감으로 거듭나 

GC녹십자도 북한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업이다. 1967년 제약사를 설립한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1세대 개성 상인’으로 불리는 고 허채경 회장의 차남이다. 허채경 회장은 개성상인 집안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이후 서울에서 석회석 사업을 시작해 한일시멘트를 창립했고, 이 회사로부터 녹십자가 탄생했다. 

일성신약을 세운 윤병강 명예회장은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기업인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일성약업 합명회사를 차렸다가 1961년 일성신약을 창업했다. 현재 최대주주는 윤 회장의 아들인 윤석근 대표다.
 
제약업계에 유독 북한 출신 창업주가 많은 이유는 이들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월남하면서 죽음과 질병을 절박하게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생 고향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적십자와 제약협회, 북한 어린이 살리기 운동본부 등을 통해 북쪽에 큰 일이 생길 때마다 인도적 지원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북한 용천역 화약 폭발 참사 때는 국내 제약사들과 함께 26억원 상당의 구호 의약품을 지원했으며,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평양 적십자병원에 의약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또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있을 때도 북측 수재민들에게 항생제, 소염제, 구충제, 소화제 등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특구에서 발생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10년 가까이 대북지원이 단절된 상태다. 

▲샘표 故 박규회 선대회장(왼쪽)과 故 박승복 2대 회장. 샘표가(家)는 3대째 북한을 돕고 있다. (사진=샘표)


식품업계, 北 장마당 ‘주목’

한편 식품업계에서는 북한 출신 창업주를 둔 기업으로 샘표, 오뚜기, 오리온, 풀무원 등이 꼽힌다.

샘표는 3대째 북한을 돕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창업주인 고 박규회 선대회장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박 회장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남쪽으로 내려와 샘표의 전신인 ‘삼시장유 안조장’을 인수하며 장류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피난민에게 장을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장남인 고 박승복 회장은 부친의 뜻에 따라 북녘 동포를 돕는 일을 이어갔다. 이북5도 행정자문위원과 함경남도 중앙도민회 고문을 맡는 등 북한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고, 1980년대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위원으로 활동해 2005년 이 단체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이같은 흐름은 1997년 취임한 3대 박진선 사장으로 이어져 샘표는 ‘북한 장류제품 보내기 운동’을 펼쳤고, 2007년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장류 200상자를 북녘 땅에 보내기도 했다.

풀무원의 모태인 ‘풀무원 농장’을 만든 고 원경선 원장 역시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이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 농장’을 차려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돌봤다. 원 원장은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겨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을 선보이고, 유기농민단체 ‘정농회’를 꾸렸다. 

풀무원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인 ‘바른먹거리 캠페인’은 이런 토대 위에서 시작됐으며, 오늘날 내로라하는 식품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왼쪽부터) 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자, 故 원경선 풀무원 원장, 故 함태호 오뚜기 회장. (사진=각사 제공)


오리온과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도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다. 이 회장은 해방 직후 단신으로 월남해 서울에서 과자 장사를 시작했고, 1947년 ‘동양식량공사’를 세워 본격적으로 식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역대급 히트 상품인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4월 첫선을 보였다. 초코파이는 과거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들이 간식이나 보너스로 받는 물품으로 유명했다. 개성공단 등지에서 흘러나온 초코파이가 북한 장마당에서 개당 10달러까지 치솟자 북한 당국이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초코파이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남북 경협의 ‘아이콘’ 역할을 했다.

오뚜기를 세운 고 함태호 회장은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1969년 오뚜기식품공업을 세웠다. 국내 최초로 카레를 생산해 대중화에 공을 세웠고, 1970년대에는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생산해 팔았다.

오뚜기는 2013년 식량난을 겪는 어린이를 돕고자 북한에 쇠고기 수프 30톤을 보낸 적이 있다. 이는 북한 어린이 200만명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분량이다. 2007년에는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한 4300여만원을 모아 북한결핵어린이돕기 운동본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로 이어져오고 있는 샘표. 창업주인 고 박규회 선대회장은 피난민에게 장을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서 장류사업을 시작했다. (사진=샘표)


‘대북제재 해제’가 최대 관건

이처럼 북녘과 인연이 깊은 기업들은 최근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르다.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지만, 추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촉을 세우고 있다.    

특히 북한 전역에 운영되고 있는 장마당에서 남쪽 제품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점은 우리 기업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전자제품과, 화장품, 옷가지, 식·음료 등 수천가지의 생활용품이 거래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CNB에 “북한은 한민족으로 같은 식문화를 갖고 있고 거리도 가까워 ‘먹거리 사업’이 진출하기 손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유엔의 대북제재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향후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 경험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볼때 과거 북한과 인연을 맺어온 기업들(북한 출신 창업주를 둔 기업)이 앞장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한발 더 나가 북한 의료인프라 구축과 의약품 공급, 제약시설 건립 등 여러 방면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보건복지부가 최근 보건의료 분야에서 대북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에 착수함에 따라 우리도 의약품 공급과 제약시설 구축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북의 의료환경이 낙후된 만큼,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 제약업계가 인도적 지원 뿐 아니라 북한과의 합작회사 설립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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