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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서울농협-마포구청, 상암 하나로마트 지으며 수십년 고목 ‘기습 벌목’

수령 50~60년 된 거목(巨木) 10그루 휴일 아침에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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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3.08.29 14:02:51

마포구, 나무값 1100만원 받고 벌목 허가…주민들 ‘분통’
농협․마포구청 “지하 굴착공사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주민들 “하나로마트 간판 가릴까봐 베어 버린 것”

(CNB=도기천 기자) 서서울농협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주차장 복합건물(DMC첨단주차전용건축물)을 건립하면서, 수령(樹齡) 50~60년된 동네 고목 10여 그루를 주민동의 없이 기습적으로 베어버려 원성을 사고 있는 사실이 CNB 단독 취재로 확인됐다.

서서울농협 복합건물의 시공사인 (주)한동건설은 지난 25일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전기톱과 포크레인으로 수십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을 밀어버렸다.

마침 이날은 공휴일이라 소음․분진 등 각종 공사민원을 제기해왔던 동네 상인회(상암동상가번영회)가 단체로 야유회를 떠난 상태였다. 또 휴일 아침에 기습적으로 벌목이 진행돼 인근 주택가 주민들도 대부분 나무가 베어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농협 측은 지하 6층까지 파들어가는 굴착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지하로 굴착하는 과정에서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고, 최악의 경우 나무가 넘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마포구청 공원녹지과 성경호 과장은 28일 CNB와 통화에서 “농협 측이 나무들 때문에 굴착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지난달부터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 왔다”며 “나무를 유지한 채 공사를 진행하거나, 옮겨 심을 것을 권유했지만, 농협측은 설계상 나무를 베지 않고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고 전했다.

결국 마포구는 농협 측으로부터 나무값명목으로 1100만원을 받고 벌목을 허가했다.

거목(居木)들 공사장 밖에 위치

특히 농협이 베어버린 나무들 대부분은 공사장 밖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CNB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베어진 나무들 중 6~7그루는 공사장 펜스와 2미터가량 떨어진 지점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머지 베어진 나무들도 공사장 펜스와 맞닿은 지점에 있었지만 펜스 밖이었다. 나무의 몸통은 사라졌지만 밑동은 남아있어 위치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잘려나간 나무들은 상암동 주민들과 반세기 세월을 함께 해온 동네의 ‘상징’이었다. 최소한 수령 5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큰 나무 10그루와 작은 나무 수십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뤘다는 게 동네 주민들의 전언이다.

수년전 이 ‘작은 숲’에 마음을 뺏겨 그때부터 나무 아래서 빈대떡집을 운영해 왔다는 김판용(54)씨는 “휴일날 야유회를 다녀와 보니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며 “하루 아침에 숲이 통째로 사라진 참혹한 모습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공사현장, 구청, 경찰서 등 여기저기 민원을 넣고 항의했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히 답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골목에서 감자탕집을 하고 있는 김종덕씨(상가번영회 회장)는 “나무들이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분진․소음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는데, 나무가 사라진 뒤부터 먼지와 소음이 더 심해졌다”고 밝혔다.

20여년간 중국집을 해온 정광욱(53)씨는 “나무들은 동네의 상징이고 추억이고 역사였다. 그것이 단돈 1100만원에 사라졌다니 어이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나무 벤 진짜 이유 따로 있다?

이처럼 잘려나간 나무들이 동네의 상징적 존재인데다, 공사장 부지 밖에 있었음에도 마포구가 농협의 벌목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이는 농협 부지가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내에 위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암DMC는 17만평 부지에 최첨단 정보·미디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LG CNS, 팬택 등 IT대기업과 KBS미디어센터, SBS프리즘타워 등 방송사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내년에는 MBC와 YTN,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이 입주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5년 상암동에 DMC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하면서 4곳의 주차장용도 부지 중 한 곳을 최근 농협에 불하했다. 농협이 건설 중인 주차장복합건물은 DMC내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이처럼 서울시의 필요에 의한 공사현장이었기에, 농협 측이 마포구에 ‘공사장 주변 나무들을 정리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농협은 주차장복합건물에 농협하나로마트를 입점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복합건물은 지하 6층, 지상 4층, 연면적 10,815제곱미터 규모로 192대규모의 지하주차장과 지상에는 1,2종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선다.

농협과 마포구청은 지하굴착공사 때문에 나무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나무들이 워낙 울창해 하나로마트 간판이 가려질 수 있어 베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NB가 입수한 농협주차장복합건물 공사계획안(설계개요)에 따르면 대지면적 1,908제곱미터 중 30%(572제곱미터)가 조경면적으로 잡혀있다. 굳이 기존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로운 조경을 하려는 의도가 투명치 않아 보인다.

한편 주민들은 공사현장 앞에 장기간 집회신고를 낸 상태며 항의집회, 관계기관 민원제기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평생을 상암동에서 살았다는 주민 김모(65)씨는 “과거 거대한 쓰레기매립장이 있었던 상암동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하는 동안에도 (베어진) 나무들은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었다”며 “개발논리에 밀려 상암동의 역사가 사라진 것인데, (농협은) 우리를 (소음․분진 등) 공사민원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상암동의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 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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