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 본관(사진: 연합뉴스)
지난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양사는 7월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 자로 합병을 완료할 계획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제일모직은 신주를 발행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교부할 예정이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하고 삼성그룹의 창업정신을 승계하는 차원에서 ‘삼성물산’으로 결정됐다. 삼성물산은 1938년 설립된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의 후신으로,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삼성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창업한 회사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의 3대 모태기업으로 꼽혀온 제일모직은 60여 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간판을 내리게 됐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옥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제일모직은 1963년 설립돼 부동산·테마파크 사업을 시작으로 건설·식음 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왔으며, 2013년에는 옛 제일모직으로부터 패션사업을 인수하고 2014년 말 상장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으로 1938년 설립된 이후 1975년 종합상사 1호로 지정됐다. 1995년 삼성건설 합병 후에는 건설과 상사부문으로 나뉘어 전세계 50여개국에서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양사는 이번 합병을 통해 패션·식음·건설·레저·바이오 등 인류의 삶 전반에 걸쳐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의식주휴(衣食住休)·바이오 선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삼성 측이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가는 26일 이후 이틀째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합병 법인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될 것이란 전망과, 신규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기대감 때문으로 분석됐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삼성물산 사옥(사진: 연합뉴스)
양사 합병 결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정된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부문 합병, 삼성SDS·제일모직 상장, 화학·방산부문 한화그룹 매각 등 일련의 사업구조 재편 작업을 추진해왔다.
이번 합병의 핵심골자는 기존의 순환출자 구조가 상당부분 해소됨으로써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단순화된다는 점이다.
그간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이었다. 이번 합병 덕분에 향후로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구조가 단순화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합병 전 제일모직 23.2%에서 합병 후 삼성물산 16.5%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의 지분은 합병 전 제일모직 7.8%에서 합병 후 삼성물산 5.5%로 바뀐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제일모직 3.4%, 삼성물산 1.4%에서 합병 후 삼성물산 2.9%로 변동된다.
합병 후 삼성물산의 오너 일가 지분 합계는 30.4%로, 여전히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 부회장은 합병회사(삼성물산)의 최대주주(16.5%)로서 삼성그룹의 양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현재 0.57%에 불과하지만 이번 합병이 완료되면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우회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1%를 보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합병 결의는 이 부회장이 그룹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중요 단계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주 그룹의 상징적인 자리로 삼성생명 지분 4.68%와 2.18%를 갖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부친인 이건희 회장에게서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