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지역 예술가 그룹 'RGA'가 비엔날레를 반대하는 취지를 관객들에게 설명하며 배지를 나눠주고 있다.(사진=RGA)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 미술계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한꺼번에 열린 최근 몇 주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볼거리, 즐길 거리 풍성…’이라는 헤드라인이 붙은 소식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 수준을 고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꽤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미술 작품이 여가나 여흥의 차원이 아닌, 머리와 가슴 그리고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서 소화해야 되는 것일 때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현대미술을 볼 때면, 아름다운 것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욕망과 관객을 새로운 시선의 세상으로 안내하는 미술 언어의 충돌이 더욱 심화되곤 한다. ‘음악 덕후’나 ‘인문학 덕후’처럼 미술 역시 ‘덕후’를 대상으로 한 지 오래됐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대미술이라는 분야가 그것을 즐기기 위해선 마니아 수준의 열정을 요구한다는 소리가 될 수도 있겠다.
상황이 변하는 과정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최근 각종 미술행사를 둘러싼 (특히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가 예가 될 수 있겠다.) 감상과 비평 등을 살펴보면, 작품의 생산자 정도의 배경 지식과 감성을 갖추지 못한 관람자가 작품과 겪는 거리감과 다를 바 없는 공허함이 느껴지곤 한다. 물론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제대로 된 비평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은 전시의 내용보다는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캡션이 무성의하게 붙어있었다거나, 작품의 디피방법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이니까.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인 듯 VIP오픈 날 음식이 제대로 대접이 안됐다든지, 작가의 말도 아닌, 작가 지인의 전시에 대한 불평을 마치 정의인 양 착각해 후속 취재나 확인을 하지도 않고 보도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광주와 부산을 비교하는 칼럼도 눈에 띄었다.
부산 지역신문은 부산비엔날레의 집행위원장의 소박한 바람이라며, “광주비엔날레보단 나아야죠”라는 멘트를 칼럼을 통해 실었다.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보다 배가량 크지만 국·시비는 25%수준이라는 자랑 아닌 자랑도 덧붙인다. 어떤 비평 중에서도 비교는 정말 저열해 보인다.
현재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는 둘 다 좋은 평가와 비판적인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광주의 경우는 ‘제8기후대’라는 10년 전에 나온 철학가의 사상에서 비롯한 주제가 양 날의 검이 되어 작품 간에 경계 없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배치된 디스플레이 방식은 호평을 받는 반면, 주제 자체는 너무 현학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 듯하다.
부산 비엔날레는 부산시립미술관의 한-중-일 아방가르드에 관한 전시가 그저 교육적이고 단조롭다는 혹평 또는 동양 현대미술사의 단면을 정리한다는 학술적 의미에서 호평, 그리고 폐공장을 개조한 F1963의 전시의 경우, 전시 공간만 너무 부각됐다거나 잘 어울린다는 두 가지 시각이 동시에 들려온다.
다양한 평가와 감상이 공존하는 가운데서 또 한 가지 생각하게 되는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성’이다. 광주나 부산 비엔날레 뿐 아니라 현재 열리고 있는 모든 미술 행사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결국 현재의 문제라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여지는지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에 대한 예술가들의 시선은 정말 다양하고 그에 따른 감상법은 더욱 다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비판에 그치는 비평의 방식은 너무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것은 아닐까. 이런 와중, 올해 3회째를 맞은 지역 미술가 단체이자 대안 공간 RGA(Real young Gwangju Artists)의 운동 ‘보이콧비엔날레’는 주목의 가치가 있어보인다.

▲비엔날레의 매표소를 형상화 한 작업.(사진=RGA)
2012년부터 현재의 현안을 뒤로하고, 지역으로부터 단절된 비엔날레를 비판하는 ‘보이콧비엔날레’는 올해 ‘OFF-LINE(오프라인)’전을 열며 3회의 퍼포먼스를 연다.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가는 인도엔 'OFF LINE'이 적힌 테이프를 둘러 비엔날레가 외부와 단절됐음을 암시하고, 이번 비엔날레의 로고에 오프라인 글자를 새긴 배지를 나눠주는 것이다. 관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서 전시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배지를 착용한다.
이들의 이런 행위는 광주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미술비엔날레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지역 예술가로서 당연한 걱정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칠수록 비엔날레가 집중하는 것은 안쪽이 아닌 바깥을 향한 세계다. 현대 미술이 생각하는 소통은 현학적인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일부 집단하고만 이루어지는 것을 아닐 터. 엘리트주의나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적 흐름을 경계하는 것, 누구에게나 비판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작품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아닌 적극성을 가지고 감상하러 방문한 사람에게 주어진 비평의 기회는 그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