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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자주 나고 피해 크면 문재인 대통령 탓? 규제완화-비즈니스프렌들리엔 책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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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기자 |  2018.01.29 14:36:09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요즘 들어 왜 이리 불이 잘 나냐?”고들 난리다. 그러면서 야당에선 이 모든 게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 탓이라며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반대로 친여 쪽에선 “이 모든 게 이명박근혜의 규제완화 탓”이라며 전-전전 정부 탓에 열을 올린다. 뭔 일만 났다 하면 현직 대통령 탓 또는 그 전-전전 대통령 탓으로 정치싸움을 하는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화재 문제가 났으면 화재 문제를 놓고 싸워야 하는데, 정치 싸움으로만 번지니 화재 문제는 해결 안 되고 국민들 가슴만 타들어간다. 

다중 이용시설에 귀찮게 사전점검 하는 미국 소방관

연이은 화재 뉴스를 보면서 2000년대 미국에서 학원을 운영하는데 소방관이 불쑥불쑥 찾아왔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에서 장사든 사업이든 하는 재미동포에게 미국 공무원이 찾아오는 건 반갑지 않다. 영어가 서툰 데다, 관(官)을 무서워하는 한국인의 습성상 ‘공무원이 떴다’ 하면 겁부터 먹기 때문이다. 

▲학교 행사에 참석해 화재 안전에 대해 소개하는 미국 소방관이 불 모양의 마스코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학원 시설이라 그런지 이 소방관은 화재 시 대피로 등을 꼼꼼히 점검하더니 “이거 이거 이거를 언제까지 개선하고 신고해라. 나는 몇 월 몇 일에 다시 오마” 이러고는 사라졌다. 없는 형편에 이런저런 시설 개수를 하려니 약도 오르고, 학원 시설이라야 작은 건물의 2층에 불과한데 소방법 기준에 따라 시설을 갖추려니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한국에서 학원 주인들이 이 같은 소방관의 불시 방문과 시설개선 지시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소방관의 규제’가 없는 한국은 그래서 참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한 나라다. 이런 비즈니스 프렌들리 혜택을 밀양세종병원 경영진 역시 톡톡히 봤던 것 같다. 통로와 4-5층에 무단으로 불법증축을 했지만 벌금 3000만 원만 낸 채 불법 시설물을 그대로 쭉 사용해왔다니 말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오너)에게 친절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그 비즈니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번 경우엔 입원 환자들)에게는 언(un)프렌들리하기 쉽다. 한쪽에 친절하자면 다른 한쪽에는 불친절하기 쉬운 탓이다. 그러나 '귀넘김'이 좋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을 워낙 잘 홍보해놔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이런 비정상(여러 당사자 중 돈 많은 사람에게만 어드밴티지를 주는) 프렌들리에 대해서는 거의 거부 반응이 없는 것 같다. 역시 돈 많은 사람에게는 참 좋은 나라다.      

제천-밀양 화재 참사 뉴스를 보면서 “아, 그때 미국의 소방관처럼 미리미리 현장점검을 하고 시설 개수를 명령했더라면 저런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헌데, 한국엔 소방관의 이런 참견이 없다. 만약 이런 참견이 상시적으로 진행된다면 "소상인들을 다 죽이려 든다. 경제도 어려운데"라면서 언론에 난리가 날 듯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7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밀양 문화체육회관을 방문, 오열하는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건축비 절감하느라 안전을 도박에 거는 도덕의 붕괴"

한국의 소방 안전 현실에 대해 이창우 교수(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하루에 120건 정도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화재가 별난 사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국내에서 화재가 났다 하면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이유를 △20만~30만 원 정도만 추가 부담하면 설치할 수 있는 방화문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으며 △상-하수도 배관 등이 통과하는 수직관통부라는 곳을 잘 타지 않는 내화충전재로 메워야 하는데 이 부분을 그냥 뚫어 놓는다든지 가연성 물질로 채워놓아 화재가 순간적으로 위층으로 번지며 △불에 잘 타는 싸구려 자재로 건물을 짓고도 팔아넘기기만 하면 최초의 건축주와 시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으니 싸고 위험한 건물을 짓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러 차례 불법증축이 적발됐음에도 벌금만 내고 그냥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난 밀양 세종병원.(사진=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지금 당장 드는 건축비의 절감이냐,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막대한 사회적인 비용의 지불이냐를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도덕적 관념의 붕괴가 가져온 결과”라고 진단했다. 
당장의 돈을 아끼자고 우리 목숨을 내걸고 있다는 진단이니, 최근 줄잇는 화재 참사의 원인은 바로 한국인의 ‘돈돈돈 돈타령’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방화문 규제도 없고, 수직관통부에 대한 규제도 없고, 싸구려 자재로 건물을 지은 건축주-시공사에 대한 규제도 없으니 당장의 돈을 아끼는 데는 참 좋다. 쭉쭉 값싸게 건물을 지어 올리고 팔아 먹기에는 최고다. 

규제를 흉칙한 것으로 규탄하다가 탄핵 당한 직전 대통령

탄핵으로 쫓겨난 직전 대통령은 “암덩어리 같은 규제”라면서 규제완화 또는 규제철폐를 여러 번 강변했다. 화재 안전에 관한 한 한국에는 암덩어리 같은 규제가 거의 없고 온통 “건축주가 돈 조금 쓰는 쪽으로 맘대로 하세요” 뿐이니 건축주-시공사는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물론 이들의 반대쪽 이해당사자인 입주자-이용자-건물구입자에겐 이런 규제 없음이 독으로 작용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비대칭-불균형은 크게 문제가 안 되는 듯하다. 

▲규제에 대해 거친 표현을 여러 차례 써가며 없애야 한다고 강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들을 보도한 jtbc 뉴스 화면.


돌이켜보면 이 나라의 재벌들과, 그들과 정답게 손잡고 있는 일부 관료들은 참으로 언어 센스쟁이들이다. 규제완화, 규제철폐, 암덩어리 규제, 비즈니스 프렌들리 같은 멋진 말들을 잘 만들어내니 말이다.

규제란 무엇인가? 기원전 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이었다는 안영(晏嬰)의 말을 들어보자. ‘열국지’에는 그가 “부(富)란 베나 비단에 일정한 폭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런 폭에 대한 규제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불편 없이 포백(布帛: 베와 비단)을 사용한다. 일정한 규제가 없으면 부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편함이나 재앙을 가져온다”고 설파한 것으로 나온다. 옷감에는 일정한 규격이 있어야 옷을 만드는 사람이 편리하다. 또 화폐경제가 발달하기 전에는 옷감이 돈 대신 쓰였으니 베와 비단에 일정한 규격이 있어야 교환이 가능했다. 이렇게 규격을 정하는 게 규제다. 그러니, 규제는 꼭 있어야만 한다. 필요한 규제가 없으면 자본주의든 시장경제든 성립되기 힘들다. 

규제완화라는 듣기 좋은 단어에 숨겨진 뜻은?

그러나 규제완화, 규제철폐, 암덩어리 규제 같은 단어들에는 이미 ‘규제는 나쁜 것’이란 성격규정이 숨어 있다. 규제란 암덩어리처럼 나쁜 거니까 없애거나 완화하면 좋다는 의미를 이들 숙어들은 품고 있다. 

규제란, 안영의 말대로 필요해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을 필두로 하는 멋진 작명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니 철폐니 하는 단어를 대량 유통시킴으로서 국민의 머릿속에 ‘규제 = 나쁜 것’이라는 등식을 심어놨다.

그리고 그 규제 완화-철폐 덕분에 한국인은 그간 세월호 참사, 경주 체육관 붕괴, 제천 화재, 밀양 화재 등 참사를 쉴새없이 당하고 있다. 규제가 올바로 서지 않는 한 이런 참사는 앞으로도 한참 이어질 듯 싶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현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경제사회특보)은 2007년 펴낸 ‘진보와 보수를 넘어’에서 “규제합리화지, 규제완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규제를 합리화하는 것, 즉 필요한 규제를 잘 유지-제정해 나가고, 공무원들이 특권처럼 부당하게 사용하는 불합리한 규제는 없어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과제인데, 재벌-은행-정치관료 등 힘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은 규제 완화-철폐라는 의도 깔린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능한 개인과 집단은 화전민과 도적떼가 되어 가치생산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그의 또다른 저서 ‘노무현 이후’에서)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합리화, 규제민주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이 쉽게 노동자를 때려잡는 구호로 사용되듯(경영주에 친절하려면 노동자단체에는 불친절하기 쉬우므로), 규제완화라는 말은 이처럼 힘있고 머리좋은 극소수만 도와주는 꼴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규제완화라는 속셈있는 말을 추방하고, 규제합리화 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규제 민주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 2500년 전 명재상 안영의 말대로 규제는 일반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촛불 이후 시대의 화두는 정치든 경제든 ‘민주화’이고, 규제 역시 민주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규제를 만들든 없애든, 완화시키든 강화시키든, 지금처럼 재벌이 초점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규제 민주화, 공무원들은 아직 준비 안 됐어도, 촛불시민들은 준비 다 돼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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