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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학문적 식견과 철학적 고견

홍원식(법학박사, 백범리더십포럼 상임이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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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차영환기자 |  2008.06.25 23:26:54


“달은 수천 번 이질어져도 그 본바탕이 남고, 버드나무 가지는 수백 번 꺽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자연과 벗하기를 좋아하였던 백범이 남긴 친필 한시 중 한 구절이다. 명성황후 시해범을 단죄하는 마음으로 일본군 쓰시다를 맨손으로 처단 했다가 체포되어 인천감영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뒤에 백범은 수원, 공주, 무주를 거쳐 함평, 해남, 보성 등지와 하동 등 3남지방의 산천을 벗 삼아 순회한바 있다.

교육개몽운동에 몸담기 시작했던 20대 후반의 백범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여동생 안신호 와의 우정 어린 시간들 또한 대동강변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주로 이루어 졌다. 모질고 험하기 그지없던 30 여 년간의 임시정부 세월을 마무리하고 환국한 백범은 흰 두루마기 바쳐 입고 찾아간 곳은 충신 정몽주의 혈흔이 서린 개성의 선죽교였다. 정식 교육을 일체 받지 못했던 백범에게 있어 자연은 곧 친근한 벗이었고 교외의 대상인 스승이었다.

친필인 ‘백범일지’와 ‘나의소원’은 4반세기 동안 조소앙과 함께 다듬어 공표한 ‘건국강령’ 속에 묻어나는 백범의 학문적 식견과 철학적 고견은 이러한 자연친화적 환경 속에서 태동하였다. ‘백범일지’는 우리 민족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를 잡았고, ‘건국강령’은 21세기 통일한국의 청사진으로서 가치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오늘은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우리 곁을 떠난지 48주년이 되는 날이다. 민족의 가슴에 예나 지금이나 보름달 같았던 백범이 일순간에 이질어졌던 날이요, 민족의 광야에서 그늘이 되어 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던 듬직한 푸르른 버드나무 한 그루가 밑동부터 베어져 나간 날 인 것이다.

그러나 백범은 자신에게 닥칠 이러한 순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한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새싹을 낼 수 있다. 나 하나가 죽어 나와 같은 애국자들을 많이 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라는 유언적 성격의 말을 ‘활천’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서거 전에 미리 밝혀 둔 것이다.

백범의 유언은 적효 하였다. 강산 곳곳에 ‘새싹백범’들은 버드나무 자라듯이 자라 나 ‘청년백범’, ‘장년백범’이 되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이지러지는 듯 보였던 역사의 달은 본바탕을 회복하여 어두웠던 역사를 밀어 냈다.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적 복지국가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남북관계와 남남갈등상황에서 바라보는 ‘6월의 백범’은 착잡하다 못해 비통하기까지 한 형국이다. 어린 아이들을 위시한 변방의 북녘 동포들이 극심한 식량난에 신음하고 있건만 남북 당국 간의 기 싸움 속에서 방치되어 있다. 동족간의 또 다른 내홍은 ‘광우병 정국’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해방 직후와 같은 좌우대립 상황이 나날이 격화되고 있다. ‘동맹’과 ‘동족’사이에서 획일적 선택이 강요되거나 당연시 되는 이 형국은 꺽이어진 버드나무 가지와 다른바 없다. 역사적 정의와 본질을 외면한 체 ‘적과 동지식’ 이분법은 어느 형태의 조직에서도 백해무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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