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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최태원·정용진·함영준…스스로 베일 벗은 회장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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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1.08.06 09:29:22

요플레 뚜껑 핥아 먹는 재벌총수
경쟁사 깜짝방문해 셀카 올리기도
확 달라진 회장님…파격 어디까지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추억의 갤러그 게임'을 하는 모습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회장님은 더 이상 베일에 싸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장막을 걷고 대중 앞에 서고 있다. 소파에 누워 게임하는 모습을 자발적으로 공개하거나 잔망스런 B급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활용 수단은 주로 SNS나 유튜브. 공식석상이 아닌 이곳에서 포장되지 않은 자신 그대로를 내보이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숨은 전략이 있다. (CNB=선명규 기자)

 

 


최태원  재계 ’큰 형님’의 익살 ‘#설정아님’



SNS에서 볼 수 있는 몇몇 클리셰(영화에서 일어나는 진부한 표현)가 있다. 어떤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마치 몰래 찍혔다는 듯이 연기하거나, 읽고 있는 책 표지를 노출시켜 자신의 취향과 지적인 면모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연출의 출연자이자 연출자는 대부분 SNS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초보자들. 하지만 대중은 이 같은 게시물이 진부하다거나 허세로 가득하다고 힐난만을 보내지 않는다. 어쩌면 SNS 초보자일 때 거치는 통과의례와 같아서 외려 정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재계 맏형’도 이 SNS 클리셰를 피해가지 못했다. 주인공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초기 게시물로 ‘#야근’ ‘설정아님’과 같은 문구와 함께 책상에 서류를 어지럽게 펼치고 골몰하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만 봐선 흔한 인스타의 한 장면이지만, 연출의 차별성은 첨언에서 나왔다. 스스로 “퇴근하고 집에서 서류 보는 거에요. 야근은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여러분”이란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책상 구석에 작게 놓인 시계가 10시를 가리키는 것을 의식해 재치있는 부연설명을 한 것이다.

차별화에는 정돈되지 않은 서재도 한 몫 했다. 연출용 사진을 위해 보통은 잡다한 요소는 치우기 마련인데 마시다 남은 듯한 음료수 캔과 빈 접시 등을 아무렇게나 놨다. “회장실은 무겁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니구나”와 같은 친근감 어린 반응이 댓글로 달린 배경이다.

천기를 누설할 만큼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례한 질문이지만 회장님도 혹시 요플레 뚜껑 핥아 드시나요?”라고 묻자 “네 그렇습니다”라며 즉답을 했다. 흔히 인터넷상에서는 요플레 뚜껑에 묻은 내용물을 먹지 않고 버려야 재벌이라고 한다.

소소한 일상도 공개하고 있다. 소파에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누워 ‘갤러그 게임’을 하는 사진이나 출근길에 반려묘와 아웅다웅하는 짧은 영상 등이 주를 이룬다. 지난달 말 본격적인 인스타그래머의 길로 발을 디딘 최 회장의 팔로워 수는 개설 한 달 만에 2만명을 넘겼다.

최 회장의 이러한 시도는 최근 중요성이 높아진 최고경영자 이미지 마케팅, 즉 PI 마케팅(president identity marketing)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과거에는 주로 ‘소통 경영’으로 뭉뚱그려 불렀는데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수가 직접 대중 앞에 나서서 기업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간과할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대학생 38.2%는 ‘그룹 대표의 이미지와 성향’에 따라 기업 이미지를 갖는다(잡코리아 조사)고 했다. 2위로 응답한 '그룹의 주요 사업 분야'(36.3%) 보다도 더 관심있게 보는 것이 그 회사의 ‘회장님’이란 얘기다.
 

최태원 회장의 야근하는 모습을 본 누리꾼들은 '회장실이라고 해서 권위적인 분위기는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이 분야 선두주자, 팔로워 67만명



PI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선두주자격이다. 매일이 파격이다. 종전에 없던 기업 총수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클리셰 없는 SNS 고수이기도 하다. 약 10년 전부터 트위터, 페이스북을 두루 오가며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다 최근엔 인스타그램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언사부터 심상치 않다. 자신의 부캐(원래 자신이 아닌 다른 캐릭터)인 신세계푸드 캐릭터 ‘제이릴라’를 향해 “짜증나는 고릴라 X끼”라고 직격탄을 날리거나, 고급 와인 사진을 올리면서는 “와인 핥아 마셨음”이라는 남다른(?) 단어를 선택하기도 했다.

행보도 통통 튀어 어디에 당도할지 모른다. 그러다 경쟁사도 찾았다. 그런데 방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유쾌하게 밝혔다. 개장 5년여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찾은 뒤 “지난 주말은 #현판에서 배카점데이(백화점 데이)”라며 셀카를 올린 것이다.

 

재계에서 'SNS 활용능력' 1위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이름이 맨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는 경쟁사를 찾고선 '현판(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배카점데이(백화점데이)'라는 게시물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갈무리)

때로는 이념적 경계(?)를 아슬아슬 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사세연)’ 계정을 팔로우하고, 가세연이 제작한 뮤지컬 ‘박정희’를 관람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거리낌없는 ‘솔직 행보’와 유머와 자기애로 점철된 SNS 활동 덕분에,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약 67만명으로 웬만한 아이돌 팬덤 부럽지 않다.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가감이 없는 정 부회장의 과감함 때문. 그리고 그 거침없는 면모는 그룹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이마트에 신제품이 나오면 먼저 SNS를 통해 홍보할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최근 신세계 이마트가 거액 들여 이베이를 사들인 것과 더불어 공격적인 투자와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가는 기업이란 인식이 단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딸인 뮤지컬 배우 함연지 씨의 유튜브에 종종 출연해 소탈한 모습을 보여 왔다. (유튜브 햄연지 캡처)

 


함영준  밖에선 회장님, 유튜브에선 그저 ‘아버지’



가족과 보내는 소탈한 일상을 내보여 친근함을 강조하는 유형도 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대표적이다. 딸이자 뮤지컬 배우인 함연지 씨의 유튜브 채널 ‘햄연지’에 자주 출연해 다정하고 유쾌한 부녀지간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함께 라면을 먹거나 MBTI 검사를 하는 등으로 아버지처럼 친근감 있는 회장님의 면모가 부각됐다.

재밌는 점은 영상에서 공개된 함 회장의 MBTI 유형이다. ‘용의주도한 전략가’로 나왔다. 이는 과연 우연일까? 결과적으로 “보기 좋은 부녀”라는 반응에 가족적인 기업이란 이미지가 심어지고 있으니, 유튜브 출연이 전략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디지털프라자 삼성대치점을 찾아 프리미엄 가전제품 판매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사진=삼성전자)

 

SNS나 유튜브만이 PI 마케팅의 중요 수단은 아니다. 사진 한 장이 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9월초,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디지털프라자에 깜짝 등장한 사진이 공개됐는데 이때 시선을 끈 것은 그가 입은 셔츠였다. 쭈그리고 앉아 제품을 살펴보는 이 부회장의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열성적인 리더의 모습이 단 한 컷으로 설명되는 대목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신중치 못한 말 한마디에 주가가 급락하고 회사가 휘청이는 이른바 오너리스크 때문에 회장님의 입은 무거울수록 좋다는 게 전반적인 인식이었다”며 “이제는 총수가 경영 외적으로도 자신의 개성과 의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해당 기업 또한 깨어있다는 인식을 줘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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