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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세 제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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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23.01.04 09:59:54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속칭 ‘빌라왕’이라 불리는 악성 임대사업자들의 수상한 죽음이 잇따르면서 이들의 사망과 수많은 피해자 양산의 배경으로 지목된 ‘전세 제도’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오가고 있다.

지난달 12일 인천 미추홀구 등지 빌라와 오피스텔 수십채를 보유한 송모씨(27세)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갑자기 사망한 ‘빌라왕’은 3명으로 늘었다. 주택 240여채를 보유하다 지난 2021년 7월30일 사망한 정모씨(42세)가 첫째고, 1139채의 빌라를 보유하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김모씨(42세)가 두번째다.

이들 3인의 죽음이 문제가 된 건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고도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애꿎은 피해자들이 수천명 단위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은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HUG가 대신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한 뒤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이 갑자기 사망하면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없어 계약 해지 요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것. 법에 따르면, 집주인의 4촌 이내 친족이 상속을 받고 후속 조치를 이행해야 하는데 ‘빌라왕’의 친족들은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법원이 상속 재산 관리인을 지정할 때까지 약 1년여간 무작정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루가 급한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보증보험에 가입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악성 임대인 30명이 세입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전세보증금이 725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빌라왕’으로 불렸던 이들이 알고보니 ‘비범한 부동산 재테크 능력자’가 아니라 수상한 배후조직에게 명의만 빌려주고 정작 자신들은 어렵게 생활하다 죽은 ‘바지사장’에 불과했다는 정황이 알려지며, 날로 늘어나는 전세 사기 범죄의 근절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 및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거론되고 있는 해법들이 하나같이 ‘언발에 오줌누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4월 1일부터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는 집주인 동의를 받지 않고도 집주인이 국세를 체납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새 법을 적용해도 세입자는 전세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야 집주인의 체납액을 확인할 수 있다. 계약 이전에는 체납 정보 열람이 불가능하므로,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외에 피해자들의 전세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전세 사기피해 지원센터를 통해 법률 상담과 임시 거처를 제공한다든가,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가구당 최대 1억6000만원을 연 1%의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게 지원한다는 등의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선 한숨만 나올 뿐이다.

 


‘보증금 회수’가 가장 중요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 조건이 ‘높은 이자율’과 ‘전세보증금의 높은 회수 가능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후자다. 이미 이자율은 낮아진 상태지만, 보증금의 회수 가능성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높았고, 그로 인해 전세 제도가 이전처럼 유지돼 왔다.

전세 제도의 신뢰성이 나름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처럼 개인이 다량의 전세 매물을 보유하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전세 매물은 중요한 자산이었고, 이를 어기는 건 법적 처벌은 물론 사회적 생명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으며, 대부분의 임대인과 임차인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갭투자가 성행하고 ‘빌라왕’들이 우후죽순 탄생하면서 이같은 요인들은 과거의 유물이 됐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사기 범죄자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 안정적인 보증금 강탈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와서 정부가 어떤 해법을 뒤늦게 내놓는다 해도 범죄자들은 금새 이를 우회할 방도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보이스피싱, 다단계사기 등의 범죄가 쉽게 근절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어쩌면 전세 사기의 배후에는 보이스피싱 이상의 치밀함과 전문성, 조직력을 보유한 집단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세입자들도 이같은 전세 제도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전세 제도는 사실상 사멸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원금 회수가 보장되지 않는 수상한 계약에 평생의 재산에 가까운 거액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십여년간 국내 전세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왔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서 한 참석자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결국, 전세 문제의 해법은 ‘보증금의 회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첫번째 해법은 HUG의 전향적 운영이다. 먼저, 모든 전세 계약에 임대인의 보증금 보험 가입을 법으로 강제한다. 또, ‘빌라왕’ 사례처럼 임대인이 사망할 경우에도 계약 기간이 종료하면 임차인이 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게 하고, 보증금을 HUG가 우선 변제한다.

두번째 해법은 전세보증금의 ‘애스크로’ 방식 운영이다. 개인간 거래에 흔히 사용되는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전세보증금을 HUG, 정부기금, 은행 등 공신력있는 기관, 단체가 보관하고 있다가 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에게 무조건 돌려주게 된다.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할 수 없고, 이자 수익만 얻을 수 있다.

이 방식은 전세 제도의 원래 취지에는 맞지만, 전세금이 갭투자를 위한 초기자본으로 변질된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어쨌든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다. 전세는 보증금의 원금 회수가 가장 우선시되는 계약이라는 것.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전세 제도는 전세라 할 수 없고, 더 이상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것.

(CNB뉴스=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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