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1주년을 맞은 이강덕 포항시장의 기자간담회는 마치 한 권의 보고서를 보는 듯했다. 수치를 나열하고 성과를 정리하는 자리였지만, 단순히 ‘성과 브리핑’이라기보다는 지난 11년간 도시를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이강덕 시장은 이날도 익숙한 어조로 “도전과 혁신”을 강조했다. 익숙하지만 가볍지 않았다. 산업 위기를 맞았던 도시를 이차전지와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의 중심지로 바꿔놓았고, 회색빛 도시의 이미지를 벗겨내며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씌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회견의 백미는 숫자나 성과가 아니었다. 기자의 귀를 붙든 것은 몇 마디 던지듯 말한 “남은 임기 동안 도약을 완성하겠다”, “세계와 경쟁하는 도시로 가겠다”는 구절들이었다. ‘도약’, ‘세계’, ‘완성’이라는 단어들이 묘하게 여운을 남겼다.
3선이라는 사실, 그리고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이뤄낸 시점. 과연 이강덕 시장의 시야는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그는 이날 정치적인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다만, 간담회 내내 곳곳에 ‘확장된 시선’이 묻어났다. 교통망, 에너지 전략, 글로벌 회의 플랫폼, 디지털 전환, RE100 실현까지…그가 포항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했지만, 그 무게는 지역을 넘어선 단어들로 구성돼 있었다.
“시장직에만 전념하겠다”는 공식적인 발언은 없었다. 하지만 “포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은 어딘가 더 멀리 보고 있는 듯했다.
기자는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말이 되는 장면, 표정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침묵. 그날의 기자간담회는 단지 포항시정의 성과를 돌아보는 자리가 아니었다.
3선 시장 이강덕이 이제 ‘완성’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새로운 챕터의 서막이 조용히 열린 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