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린 전국법관대표회의…모든 안건 '부결'

지난 회의 때는 ‘대선 영향’에 결론 못내…이번엔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에도 모두 ‘침묵’

심원섭 기자 2025.07.01 11:42:30

지난달 30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에서 5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 (자료제공=법관대표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따른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의 법관 탄핵 추진 등 5대 안건에 대해 표결을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

지난 5월 26일 열린 임시회의에서 안건을 논의했으나 대선(6월 3일)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대선 후인 이날 오전 10시 전체 126명 가운데 9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온라인 원격회의 방식으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신뢰, 재판독립 침해 우려 등에 대해 7개 안건이 제시됐고 중복된 안건에 대한 수정을 거쳐 확정한 5개 의안이 표결을 진행했으나 어느 안도 의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안건별 투표 결과는 반대가 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초래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노력함을 천명한다’는 첫 번째 안건은 찬성 29명·반대 57명으로 부결됐다.

이어 해당 안건에 통합된 ‘전합 판결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이 재판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을 깊이 우려한다’는 내용도 찬성 29명·반대 56명으로 부결됐으며, ‘판결한 법관에 대한 특검·탄핵·청문 절차 재발 방지 촉구’는 찬성 16명에 반대 67명, ‘사법의 정치화를 막고 이에 대한 연구 및 논의 진행 필요성 안건’은 찬성 18명에 반대 64명으로 역시 통과되지 못했다.

또한 ‘재판독립 보장과 재판에 자유·평등·정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긴 안건은 찬성 14명에 반대 67명, ‘법관대표회의 차원에서 분과위원회를 통해 제도개선안에 대한 연구·논의를 진행한다’는 안건은 찬성 26명에 반대 57명으로 역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의 과거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관련해 법관대표회의 입장을 표명하자’는 안건과 ‘사법권 및 재판독립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자’는 안건 등도 모두 부결됐다.

 

대법원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사진 =연합뉴스)

  “오해받느니 차라리” 부결, 부결, 부결, 부결, 부결

 

앞서 지난 5월 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 소집을 두고 사법부에서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과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한 의견 표명은 자제해야 한다”는 반론이 대립하면서 일각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과 임시회의 소집 결정이 성급하다는 목소리가 맞붙기도 했다.

이러한 상항에서 결국 법관대표회의가 입장표명을 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한 것과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법관대표들이 당장은 자중하고 앞으로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본 뒤 입장을 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임시회의 소집 여부를 결정할 투표 당시에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대선을 앞두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들이 연기됐고 조 대법원장 사퇴와 대법관 증원 등에 대한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 수위도 낮아진 만큼 굳이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법원 고위관계자는 “이번 법관대표회의 투표 결정이 지난 대선 결과와 정치권 압박이 다소 영향을 미쳤겠지만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법원이나 정치권이 신중 모드로 돌아선 만큼 서로 자중하는 태도가 필요했다”면서 “앞으로는 법관들이 섣불리 부적절한 성명을 내기보다는 사법개혁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법원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서초동 법조타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에 대한 안건도 모두 부결된 것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지나친 저자세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서 “사법부 흔들기에도 법조계를 대표하는 법관대표회의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정치권의 사법부 길들이기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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