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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등급 프랑스 영화 2편에 대한 단상

‘지옥의 체험’·‘베즈 무아’ 성패 엇갈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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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대갑기자 |  2007.01.02 16:06:56

▲섹스클럽 총기 난사

영화를 사람들이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환상”을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잘 생긴 남녀 배우가 화면 가득히 등장하여 꿈같은 사랑과 모험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도 그런 상황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의 영화는 마냥 이런 즐거움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때론 과격한 폭력과 살인, 섹스를 여과 없이 보여주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영화든지 섹스장면은 약방의 감초처럼 반드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게 오락영화이든, 연애영화이든, 예술영화이든지 간에 섹스 장면은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한다. 어떤 영화는 섹스를 위주로 해서 제작되기도 한다. 젊은 남녀 간의 성적인 욕망을 다룬 영화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적당히 포장되어 성인 등급물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버젓이 상영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성의 해방을 외치고, 한 편으론 매매춘을 단속한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섹스 장면이 등장할 때는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무작정 섹스 장면이 등장해서도 안 되고, 섹스가 일종의 배경으로 등장해서도 안 된다. 왜 그 자리에 그런 장면이 있어야 하는지 합리적인 이유가 은근하게 깔려 있어야 한다. 무릇 모든 예술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철학이 논리적이고, 예술이 감성적이라고 말하지만 논리적인 정합성은 예술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다. 다만, 예술을 해석하는 데에는 정서라는 감성의 영역이 더 크기 때문에 논리적인 해석보다는 “느낌”에 의한 해석, “느낌”에 의한 이해가 많이 차지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영화 <베즈 무아>는 논리적 정합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두 명의 하층 여성이 “남자”라는 종족에 의해 사회에서 무참하게 폭력을 당하고 무시당한다. 매춘부 나딘과 전직 포르노 배우 마뉘는 어느 날 우연히 “총”이라는 달콤한 권력에 취하게 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남성들에게 무시당했던 두 여자는 총이라는 권력을 만나면서 폭력적인 일탈을 행사한다.

▲침실의 그녀

각자 오빠와 룸메이트를 별 것 아닌 이유로 살해한 두 여성은 프랑스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남자들을 쉽게 유혹하여 지저분한 섹스행각을 벌인다. 그들의 섹스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자각 없이 철저히 쾌락만이 있을 뿐이다. 콘돔을 쓴다고 해서 섹스 도중에 남자를 살해하는 엽기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직 스트립 댄서였다는 데스팡떼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소설 <베즈 무아>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었다는 이 X등급 영화는, 포르노와 에로물의 중간 단계를 간신히 흉내만 내고 말았다. 그래서 도대체 이 영화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두 하층민 여성의 일탈적인 행위를 여과 없이 보여주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알리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적나라한 섹스장면으로 인해 희석화되고 말았다. 설사 조금이라도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해도,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말인지, 무얼 하자는 말인지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포르노 행위- 오럴섹스, 남녀 성기의 적나라한 결합 모습, 스와핑을 연상시키는 집단 성행위-가 어떤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그 자리에 있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다.


▲유혹하는 여심


그래서 <베즈 무아>는 계몽적인 성격도, 대 사회적 메시지도 갖지 않은 채 침몰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영화의 전형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계몽적인 성격을 가지고 싶었다면,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섹스클럽 총기 난사 장면을 일탈된 성행위에 대한 경고로 승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지옥의 체험>은 베즈 무아와는 조금 다른 X등급 영화이다. <지옥의 체험>은 처음부터 섹스와 여성, 생명을 테마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이고 영화 전편에 깔린 논리적 정합성도 눈에 돋보였다. 이 영화 역시 프랑스 여성감독인 브레이야가 자신이 쓴 소설 포르노카티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우선 베즈 무아와 현저히 다른 점은 섹스 장면이나 여성의 육체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일정한 논리 속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이클럽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남자.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탐구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남자는 그 대가를 요구한다. ‘당신(혹은 남자)을 좋아하는 여자가 얼마나 자신의 몸에 몰입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다’는 여자의 말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기본 맥을 암시하고 있다. 계약이 이루어진 두 남녀는 바닷가에 위치한 여자의 외딴 집에서 나흘간에 걸친 육체적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떠나가고

첫째 날 밤부터 영화는 다소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상들을 보여준다. 여자의 음부에 립스틱을 칠하는 장면, 곧 이어 입술에 그 립스틱을 바르고 두 남녀는 후배위의 자세로 성교를 하게 된다. 성교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남자, 그 남자를 여자가 위로하면서 여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미 둘 사이에는 남녀 간의 권력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둘째 밤에는 다소 엽기적인 장면이 등장하면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남자가 여자의 음부에 생활도구인 쇠스랑의 손잡이를 쑤셔 박는 것이다. 여성의 음부에 대한 지독한 학대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의 메시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게이인 남자가 여성의 음부에 대한 두려움의 일환으로 그런 행동을 했으리라 조심스레 추론할 수 있다.

셋째 밤에는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테마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가 자신의 음부에 박힌 생리대를 꺼내어 글라스에 넣고 물을 따른다. 글라스에 가득 찬 분홍빛 생리혈. 여자는 남자에게 마시라고 주문한다. 생명 창조의 물이라고 하면서.

이윽고, 남자가 그 물을 마시고 여자도 따라 마신다. 너무 엽기적인 장면이라 보는 사람을 아주 힘들게 하지만, 영화의 주 메시지인 관계로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생리혈은 생명 창조의 소중한 원천임을, 여성의 몸이 생명과 직결됨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날, 남자는 생리중인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음부에서 성기를 빼내는 순간 생리혈이 성기와 침대를 적시게 된다. 남자는 성기에 묻은 생리혈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리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무언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바로 앞의 장면이 너무 잔혹해서인지 마지막 날의 장면은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보는 사람들도 어느새 생리혈이 생명창조의 원천임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환상적이다. 여자의 집을 다시 찾은 남자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태에서 여자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기도 한데,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극명하게 대비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의 체험>은 너무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수입불가 판정을 받은 작품이며, 들리는 말로는 심사위원 7명 중 3명이 도중에 자리를 뜰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메시지가 뚜렷한 점이 무척 돋보이며, 대사에 녹아있는 감독의 논리적 사고가 명징한 작품이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척 난해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예술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지옥의 체험>이며, <베즈 무아>는 감독의 의도조차 명확하게 못 살린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보는 것이 무척 힘들긴 하지만 <지옥의 체험>은 한 번 쯤 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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