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후반에 이른 사람들은 어릴 때 ‘재수 옴 붙었다’는 말을 쓰면서 자랐다.
'재수가 지독하게 없다'는 말로, 특히 경상도에서 많이 사용된다.
아주 나쁜 일을 당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지금도 종종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쓰기도 한다.
옴이란 단어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라(癩)자와 개(疥)자의 2가지가 있다.
라(癩)자는 3가지 뜻이 있는데 아주 심한 피부병을 말하거나, 약물에 중독돼 피부가 가렵고 헐어 망가진 상태를 말한다. 또다른 하나는 3종 법정전염병인 한센병으로 피부가 헐어있는 상태를 말한다.(주:한센병을 일제강점기의 일본식 표현으로는 '나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라(癩)'는 '부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가렵고 허는 병'으로 해석한다. 아주 심한 옴(疥)이란 뜻이다.
개(疥)자 역시 피부질환의 하나로, 피부가 가렵고 허는 병을 일컫는다. 그러나 라(癩)자 보다는 상태가 훨씬 심하지 않은 상태다.
개(疥)질환의 대부분은 몸 속 내부의 원인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옴과 드물게 진드기가 원인으로 쉽게 전염되는 전염성 옴이 있다.
피부가 가렵고 헌다는 관점에서 보면 라(癩)자와 개(疥)자의 차이는 증상이 경하고, 중하고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 진드기가 원인인 전염성 옴은 예외로 한다).
이 두가지는 요즘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아토피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800여가지의 먹을거리가 기록된 동의보감 탕액편
요즘은 질병치료와 예방에서 먹을거리가 특히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동의보감 탕액편을 정리해 번호를 붙여보면 총 1403가지나 된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먹을거리는 800여가지이고, 한의사들이 처방에 전문적으로 쓰는 것이 600여 가지다.
그래서 동의보감에는 ‘음식과 약으로 병을 치료한다(食․藥療病)’는 유명한 말이 있다. 질병치료와 예방에서 한의학은 오랜 옛날부터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서양의학도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음식에 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몸 상태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면 심한 피부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중에서 요즘 우리가 즐겨먹는 메밀에 대해 동의보감 원문의 곡부-50. 교맥(蕎麥·메밀)에는 "교맥은 성질이 평순하고 차며, 맛은 달고, 독이 없다(性平․寒․味甘․無毒).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더해준다. 비록 여러가지 병을 생기게 한다고는 하나 능히 오장에 있는 찌꺼기와 더러운 것을 정련하고 정과 신을 이어준다(實腸․胃, 益氣力, 雖動諸病, 能鍊五藏滓穢, 續精․神).(본초)
오랫동안 먹으면 풍이 동해 사람의 머리가 어지러워지게 된다. 또 돼지고기(수부−147)나 양고기(수부−83)와 같이 먹으면 심한 옴(풍라)이 생기게 된다(久食․動風, 令人頭眩, 合猪․羊肉食, 成風癩).(본초)"고 기록돼 있다.
또 곡부-51. 교맥면(蕎麥․麪·메밀가루)에는 "교맥면은 능히 여러가지 헌데(피부병)를 생기게 하므로, 가능하면 삶아서 먹는다(能發起諸瘡, 可煮食之).(직지)
민간에서 말하기를 '1년 된 심하게 막힌 기운이 위와 장 속에 쌓여있을 때, 메밀가루를 먹으면 적이 삭아서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俗謂一年沈滯, 積在腸․胃間, 食此麥, 乃消․去).(식물)"고 기록돼 있다.
곡부-52. 교맥엽(蕎麥․葉·메밀 잎)에는 "교맥엽을 나물로 만들어 먹으면 몰린 기운을 내리게 하고, 귀와 눈을 밝아지게 한다(作菜茹食之, 下氣, 利耳․目).(본초)”고 기록돼 있다.
곡부-53. 교맥양(蕎麥․穰·메밀 대)에는 "교맥양을 태워서 재를 만든 다음 잿물을 받아 집짐승의 헌데(피부질환의 우리말로써 아토피, 건선, 한포진 등 서양의학의 난치성 피부질환을 말한다.)를 씻는다(燒灰․淋汁, 洗六畜․瘡).(일용)”고 기록돼 있다.
(주:위 본문은 역자의 '물고기 동의보감'에서 인용했다. 곡부-50, 51, 52, 53은 약으로 쓰이는 곡식 106종 중 50, 51, 52, 53번째 기록이라는 뜻이다)
◇원전 함부로 해석하면 본질적 가치 훼손
위의 동의보감 조문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곡부-50. 교맥(蕎麥·메밀)의 두번째 조문이다. 왜냐하면 일부 다른 동의보감 해석판에는 ‘돼지고기(수부−147)나 양고기(수부−83)와 같이 먹으면 한센병(나병)이 생기게 된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자는 ‘돼지고기(수부−147)나 양고기(수부−83)와 같이 먹으면 심한 옴(풍라·風癩)이 생기게 된다’고 해석했다. 전염성질환의 실험기전은 서양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실험에서 밝혀진바 있다.
병원균이 원인이 돼 상처를 통해 접촉하는 경로로 전염되는 것이 한센병이다. 만일 ‘메밀을 몸이 좋지 않는 상태에서 고기류와 함께 먹고 한센병이 생기게 된다’고 해석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전염병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현대과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마치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바이러스란 병원체에 의해 성적접촉으로 인한 상처나 혈액감염 등으로 감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인해 몸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병’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요즘 서양의학에서 아토피라 부르는 질환, 즉 심한 피부질환 중의 하나인 심한 옴(풍라)으로 해석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몸 속의 원인으로 생기는 피부질환이 심한 옴(풍라)이다. 요즘 동의보감이 2009년부터 영문판으로 해석돼 외국으로도 나간다고 한다. 외국으로 나간 영문판 동의보감은 메밀에 관해 어떻게 해석돼 나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역자는 당연히 영문판 동의보감이 2번째 조문을 '심한 옴'으로 제대로 해석해 외국에 나갔으리라고 믿고 싶다.
◇만약 지금 경주 석굴암을 발굴한다면?
석굴암(石窟庵)은 경북 경주시의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 사찰(石窟寺刹)이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증수할 때 처음 세워졌으며, 신라의 건축과 조형미술이 반영돼 있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으나 ‘석굴’, ‘조가절’ 등의 이름을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 석굴암으로 불리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석굴이며, 1913년 이후로 일제가 수차례 해체·조립·수리하기 전까지는 원형을 유지했다.
현재는 부실 복원에 따른 습도 때문에 유리벽으로 막아 보존되고 있다. 석굴암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적인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처럼 '한국은 식민지'라는 사고를 가진 일본인들에 의해 함부로 파헤쳐진 석굴암의 원형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만일 21세기인 지금 복원했다면 지금의 발달된 기술과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 하나하나 내 몸의 일부 처럼 흙 하나, 돌 하나도 소중하게 다루어져 복원됐을 것이다.
석굴암의 예 처럼 동의보감도 내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소중히 다루면서 정확한 해석과 한의학적 사고로 철저한 검증과 복원이 필요하다.
‘동의보감과 투명인간’ 같은 내용은 단순한 트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뜻만 바로 전달하면 시비가 명명백백 가려지게 된다. 또 ‘동의보감과 녹차’ 같은 내용도 전체적인 문맥의 흐름만 바로 잡아줘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메밀과 옴’에 관한 해석 부분은 오역으로 인한 결과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만일 이 문제가 정확히 해석되지 않고 동의보감 영문판 해석에 곳곳에 있다면 외국에서 큰 문제가 돼 과학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내용으로 인해 서양인들의 인식이 동의보감을 대체의학이나 경험의학 혹은 민간요법 정도로 폄하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앞선다.
<프로필>
1987년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1회 졸업
1987년-현재 대구 인제한의원 원장
2011년 ‘물고기 동의보감’ 출간
대표전화 053)555-5508
www.inj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