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안동석씨.
안동석은 서른 살, 백수다. 7월에 있는 경찰시험을 준비중이라는 그는 현재 열 달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백수생활 자체를 즐길 줄 알기 때문에 그는 열 달간의 생활이 지겹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이야 신경 안 쓰면 그만이고, 다만 가족들한테 눈치가 좀 보여서 그렇지 백수는 재밌어요. 백수라는 건, 딱히 내가 뭘 해야겠다 이런 걸 찾지 못한 상태고 정확히 말하자면 찾는 도중인 거죠.”
가족들만 아니면 계속해서 백수로 남고 싶다고 말한 그는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 몸 하나 책임질 능력쯤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조바심을 내지도 않는다.
그는 백수가 되기 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경비도 해봤고, 벤처기업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유통회사 직원으로 근무도 했었고, 방송국에서 스텝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우체국 택배 일도 했었다. 여기에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열 군데가 넘는 곳에 몸을 담았었다.
그는 돈이나 직업때문에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느리게 살든 빠르게 살든 하루 24시간 쓰는 것은 똑같고,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쌓았던 시간들은 살이 되고 뼈가 되고, 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백수인 그는 가난하다. 벌이가 없으니 나가는 돈만 많다. 가장 많은 돈을 쏟은 것은 오토바이로, 2년 전 드랙스타라는 오토바이를 중고로 450만 원에 구입했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오토바이를 샀어요. 원래는 자전거를 좋아해서 자전거 타고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었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강한 것이 필요했고, 그게 오토바이였죠.”
그는 오토바이 마니아다. 오토바이 엔진특유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철컥거리는 소리를 못 견디게 좋아하고 머플러에서 터져나오는 힘찬 소리를 사랑한다. 400cc 오토바이가 뿜어대는 묵직함에 중독되어 오토바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달리는 라이더 안동석씨.
“오토바이는 술, 담배와 함께 합법적인 3대 마약이에요.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갈 수 없는 늪이 오토바이고 죽기 전까지 빠져나갈 수가 없을 거라고 라이더들은 말하죠.”
다행히도 그는 늪에서 별 탈 없이 5년을 보냈다. 운이 좋아서 큰 사고를 당한 적 없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의 사고로 무서움을 배웠다. 체인에 녹이 슨 줄도 모른 채 달리다 사고를 당해 세상을 등졌다는 친구와 면허도 없이 오토바이에 올랐다가 대퇴부 골절로 고생하는 다른 친구를 보며 달리는 것에만 열중하지는 않을거라고 다짐한다.
사고가 무섭긴 하지만 오토바이는 사람을 이어주는 요긴한 도구이기도 하다.
“오토바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인터넷을 켜면 오토바이 커뮤니티부터 들러서 오토바이 관련 글이라든가 찍은 사진 등을 올리는데, 그 곳에서 다른 라이더들과 친해졌죠. 지금은 스무 명 정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구요.”
그의 말에 의하면 라이더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라이더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오토바이에 오르고 오토바이에 오르면 자아를 찾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전에 야마하 광고에 ‘오토바이는 인간과 머신의 고차원적인 융합이다’라는 카피가 있었어요. 오토바이의 두 바퀴는 균형을 의미하는데 바퀴들이 구르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이 느낌은 더욱 생생해지죠. 오토바이를 타보지 않은 사람에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토바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어요.”
그의 말에 공감하며 나는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부둥부둥! 머플러를 조금 손봐 소리가 좀 터프할 거라고 웃는다. 원래 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도록, 원래 진동보다 더 크게 들리도록 부속을 몇 개 바꾼 오토바이는 오른손을 비틀자 강렬한 폭발음을 냈다.
그와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가로지른다. 차들이 가득한 거리 속을 오토바이는 유유히 건너간다. 바람이 얼굴을 바로 때리고 머리가 울린다. 불빛 가득한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를 따라 빠르게 흘러간다.
그와 내가 내린 곳은 신촌이었다. 그는 오늘 신촌에서 오토바이를 팔기로 했다.
“7월 시험에 집중하려고 오토바이를 파는 거에요. 나름대로 백수가 세상과 타협하는 거랄까, 이제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서른 살 이후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 파는 건데 많이 허전하긴 하네요.”
그는 350만 원에 오토바이를 넘겼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하고 쓸쓸하게 웃는다.
서른 살은 결정을 내려야하는 나이다. 그는 가장 아끼는 오토바이를 세상에 넘겨주고 좀 더 분명한 길을 걷겠다고 한다.
이제 그에게는 오토바이가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을 달리는 라이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