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이는 디트로이트시의 도심 벽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다. 디트로이트시가 결국 파산 절차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시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미국 자동차메이커들이 보다 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 미국 남부로 대거 이동한 것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노사분쟁을 보면서 디트로이트시가 연상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현대·기아차는 거의 해마다 노사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현대·기아차가 이러한 노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이달 들어 현대·기아차의 노조 파업을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현대차의 직원 평균임금은 연간 9400만 원으로 상위 5%의 고소득 계층에 속한다. 현장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간접적인 복지지원비를 제외하고도 1억 원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의 구실이 된 현대차 노조의 요구는 이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려 180여개가 넘는 임단협의 요구사항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순이익의 30% 성과급(1인당 약 3000만 원), 상여금 800% 지급(현재 750%), 기본급 13만498원 인상, 사내 하도급의 정규직화, 정년 61세로 연장(현재 58세), 5년 이상 근속자 퇴직금 누진제 실시 등이 있다.
현대차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경우 내년도 평균임금이 2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귀족노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파업 장기화 시 사상 최대 생산손실 불가피
현대차는 노조설립 후 지난해까지 무려 23년간 파업손실액 13조4000억 원과 생산대수 120만대의 차질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으며, 귀족노조라는 여론의 뭇매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파업카드를 꺼내들었다.
현대차는 지난해에도 파업 및 특근거부 등으로 8만2000여대의 생산이 지연돼 1조7000억 원의 피해를 입은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11주간의 휴일 특근거부만으로도 벌써 1조6000억 원의 생산차질을 빚으면서 지난해 파업손실액에 육박한 상태다.
최근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노사 분규를 최대한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지난 20일 부분파업에 들어가며 잔업과 특근도 거부했다. 기아차 또한 21일 부분파업에 동참하는 등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현대차는 이틀간 노조의 부분파업에 따라 4212대의 생산차질로 870억 원의 파업손실액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아차 역시 생산차질이 1500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업계에서는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파업손실액이 사상 최대치인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약 5000여 협력업체의 손실 역시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현대차 노조의 주말 특근거부에 따른 협력업체의 매출 손실은 1조3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귀족노조 파업에 비난 여론 봇물처럼 터져
이러한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지역 상공계와 시민단체는 물론, 네티즌들의 비난 및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1일 울산지역 한 일간지에 게재한 호소문에서 “현대차 노사가 불협화음으로 치닫는다면 숱한 협력업체와 관련 산업은 물론 울산지역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현대차의 문제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노조는 인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한때 미국 번영의 상징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하던 디트로이트시가 극심한 노사분규와 부채로 파산한 교훈에서 볼 수 있듯,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떠난다면 결국 모두의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민단체 활빈단은 “현대·기아차 노조는 국익, 공익, 민익에 반하는 귀태(鬼胎·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노조”라고 비판하며 파업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 역시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이 ‘귀족노조의 명분 없는 이기주의’라며 대대적으로 꼬집고 나서고 있다.
한 네티즌은 “현대차 귀족노조가 배부른 모양이다. 이제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진정한 강성 귀족노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의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현대·기아차 귀족노조들은 자기들 배만 불리며 두드리고 있다”며 “자신들의 몫을 조금 줄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도 전혀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일부에서는 현대·기아차 불매운동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07년 1월에 노조 파업의 대가로 성과급 50%를 받기로 한 뒤에 네티즌들 사이에 ‘현대차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등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경험이 있다.
벤처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은 아무리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사회 통념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재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사가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상생전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들 노조의 파업 행태는 마치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절망을 느끼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한 취업재수생은 “현대차의 노조 파업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는 과연 미래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며 “귀족노조가 버티고 있는 한 청년 실업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파업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수입차의 급속한 내수시장 잠식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장기화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상황”이라며 “파업으로 생산차질이 생기면 결국 회사로선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늘려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