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 직원들이 제품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사진=홍석천기자)
사회적기업의 정체성은 참 모호하다. 쉽게 설명하면 물건을 팔기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물건을 파는 기업이다. 대부분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을 일정 비율이상 고용하고, 대부분의 수익도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
철저한 자본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보통의 사람들에겐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2007년 사회적 기업지원법이 제정된 지 7년이 지났다. 예비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한 기업이 순차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먼저 생각한다는 ‘사회적 기업’이지만 지난 7년간의 시간의 지나면서 세상의 관심이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이다.
◆녹록치 않은 사회적 기업 현실
실제로 사회적 기업 5곳 중 4곳은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발표한 사회적기업진흥원의 ‘2013년(2012년 기간) 사회적 기업 경영공시 현황’에 따르면 경영공시 참여 81개 기업 중 흑자를 낸 곳은 18곳(22.2%)에 불과했다.
흑자기업의 평균 영업이익은 1억1834만원, 적자기업은 마이너스 1억3332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들 81개 기업은 평균 36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특히 취약계층 근로자는 기업 당 평균 20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들 사회적 기업 종사 근로자들의 월급은 평균 129만원으로, 2012년 보건복지부 기준 4인 가구 최저 생계비인 149만5000원에 미치지 못했다. 수익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기업의 이상이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품화를 기다리고 있는 새싹.(사진=홍석천기자)
◆공동체 의식이 성장 원동력
이런 사회적 기업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유은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나눔공동체는 경제성과 공익성을 두루 갖춘 몇 안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꼽힌다.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에 위치한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의 대부분 직원들은 장애인이다. 지난 1994년 장애인의 직업 재활을 목적으로 출발한 나눔공동체는 의류사업 등을 거쳐 2004년부터 새싹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해 2008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획득했다.
이곳 나눔공동체에는 장애인 50여 명을 비롯해 80여 명의 취약계층이 한 가족으로 일하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대기업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나눔공동체의 가장 큰 목표는 노동을 통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립이다.
권남규 사무국장은 “장애인, 고령층 등 사회취약계층이 일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나눔공동체의 설립목적”이라면서 “처음에는 업무 속도가 일반인에 비해 느리지만 교육을 통해, 그리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배치하면 작업의 효율성과 직원의 직무개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며 나눔공동체의 인력관리 시스템을 설명했다.
대부분 청각·지적장애인이지만 일반인 못지않게 열심히 일한 덕에 무공해 새싹채소로 올해 3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어린잎채소를 재배하는 하우스 전경(사진=홍석천기자)
◆품질제일주의로 사회적 기업 모범사례로
나눔공동체가 장애인들의 자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일반 기업과 조금도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 아니 장애인 기업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더욱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권 사무국장의 귓뜸이다.
수경재배를 통해 생산되는 나눔공동체의 채소들은 각각 10여 종의 새싹채소와 어린잎채소로 구성돼 있다. 재배과정은 시작부터 품질을 중시하는 ‘나눔공동체’의 깐깐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약품처리되지 않은 엄선된 새싹 씨앗과 손으로 직접 고른 콩나물 콩을 물에 담그는 것을 시작으로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어 새싹 드럼재배기에 2~3일 정도 발아시킨 뒤, 새싹 의 재배 조건에 따라 음지·양지식물로 구분해 5~6일 정도 재배한다.
전 재배과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은 철저한 수질검사를 통과한 낙동강 상류의 깨끗한 지하수이다. 다 자란 새싹채소는 세척실에서 세척을 거친 후 물을 털어낸 다음, 포장을 통해 전국의 고객들에게 배송될 채비를 갖춘다.
한편, 새싹채소 작업장 바로 옆에 있는 하우스에서는 어린잎채소를 재배하는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약 280평의 면적에서 사계절 내내 자라는 어린잎채소는 씨앗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모판에는 채소의 종류와 씨를 뿌린 날짜가 적힌 푯말을 달았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위생은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다. 직원들은 출근을 하자마자 장화 신고, 모자 쓰고, 위생복을 입는다. 손을 씻어 말리고 에어샤워기를 지나 작업실로 들어가는 과정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같다.
◆고기가 아닌 고기잡는 법 가르쳐야
하지만 지금 나눔공동체는 성장과 정체의 기로에 서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공성에서의 성과는 거두고 있지만 경제성 즉, 수익성이라는 부문에서 정체돼 있는 것이다.
권 사무국장은 “나눔공동체의 모든 작업은 가능한 한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일일이 직원들의 손끝에서 나오도록 하고 있다”면서 “기계를 쓰면 사람이 많이 필요 없지만, 고용창출을 목적인 곳으므로 근로자를 늘려야 하는 것은 고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 3년간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이후에는 자립해야 한다. 실제 나눔공동체도 규모를 더 확대할 경우 적자 전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권 사무국장은 “나눔공동체는 수익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일반 기업과 달리 장애인의 자활이라는 공공성 유지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줄어들어 지속성이 위협받을 경우 이후 추가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사회적 기업 지원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아직 사회적기업에 폐쇄적인 서향을 보이고 있는 공공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나눔공동체의 매출 중 공공기관 비중은 1%도 되지 않고 있다.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정부가 우선 구매하는 것처럼 사회적기업에도 우선권을 더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경북=홍석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