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5.06.05 14:44:24
▲지난해 10월 6일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2) 개회식이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최재천 COP12 대체의장, 브라울리오 페레이라 데 소우자 디아즈 CBD 사무총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헴 판디 인도 환경산림부 차관보, 윤성규 환경부장관, 아킴 슈타이너 UNEP사무총장, 염동열 국회의원,데이비드 쿠퍼 CBD 국장, 김시성 강원도의회 의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강원도청)
박원석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나고야의정서와 통상분쟁의 씨앗'을 주제로 한 한국경제연구원 칼럼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 확보와 산업계 보호를 위한 정부부처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관심을 촉발하고 있다.
'유전자원 접근 및 그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공유에 관한 나고야의정서'가 2014년 10월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차 나고야의정서 당사국회의(COP-MOP1)를 통해 정식 발효됐다.
나고야의정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외국 유전자원 이용자는 원산지국으로부터 사전에 통보해 이용허가를 받고, 이익공유를 위한 상호합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나고야의정서 당사국은 자국의 이용자가 이러한 사전통보승인과 이익공유계약을 체결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점검기관까지 설치해 원산지국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만약 이용자가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때에는 상품 개발에 투여된 엄청난 투자비와 수익금을 빼앗기고 지적재산권까지 박탈당할 수 있다.
나고야의정서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전 세계 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800조~1200조원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도 있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의 부속의정서로 채택된 국제환경조약이다. 하지만 실제 영향은 대부분 산업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이 강제한 이익공유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 방법, 이행강제수단 등에 대해 상세하게 합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협약은 유전자원 자체에 대해 지적재산권에 상응하는 국가주권을 인정하며, 외국의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기업은 그 유전자원의 원산지국과 이익공유계약을 체결해 이익을 서로 나누도록 강제했다. 1993년 12월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되기 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식물, 미생물 등 모든 유전자원은 인류의 공동유산으로서 누구나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제약, 화장품, 건강, 바이오 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유전자원이지만 기업에 유용한 유전자원들을 연구, 개발해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독식할 수 있었다.
지난해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 기간에 열린 제1차 나고야의정서 당사국회의를 통해 이익공유방법을 강제한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서 각국 생물자원에 대한 인식은 급반전된 것이다.
실제 나고야의정서가 산업계에 끼친 영향은 타미플루와 후디아사건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2000년대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떨게 한 조류독감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사실 중국 운남의 민간에서 해열제로 널리 사용되던 팔각회향이라는 나무의 뿌리와 열매를 이용해 개발된 것이다.
만약 나고야의정서가 조류독감 창궐 전에 발효됐다면 중국은 타미플루의 제약사인 스위스 로슈사로부터 매년 3-5조원의 수익금 중 상당금액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쉬맨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프리카 산(San)족은 장기간 사냥을 떠나는 경우 후디아라는 선인장과 식물의 뿌리를 휴대했다. 후디아 뿌리가 공복 시 허기를 달래주는 효과를 가졌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약품이나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유럽의 많은 회사들은 이러한 전통지식에 바탕을 둔 후디아 상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독식했지만, 최근 들어 이익공유계약을 체결해 수익금의 5%정도를 로얄티로 지불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한중 FTA협상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의 특허청에 유전자원을 이용해 특허를 신청하는 경우 상호 간에 통보하고, 유전자원의 출처를 요구하며, 위반 시 특허를 거부하거나 취소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비록 중국의 주장이 한중 FTA 본문에 포함되지 않고 추후 논의사항으로 미뤄졌지만 가까운 미래에 첨예한 통상분쟁의 대상으로 부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재 나고야의정서의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처, 산업자원부 등 다른 이해관계 부처들은 산업계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행법률안에 합의해 이를 국회에 제출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동 법률안은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대부분 시행령에 일임하고 있어 향후 시행령 세부사항에 대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중앙대 박원석 교수는 "나고야의정서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외관상 국제환경조약이다. 그러나 의정서를 순순한 국제환경조약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없다. 무늬만 환경조약일 뿐 실제 대부분 산업계에 미치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 확보와 산업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부부처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