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통신 3사가 ‘청약(개통) 철회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비자의 이동전화 청약철회권 보장을 위한 간담회’ 모습. (사진=이성호 기자)
한번 개통하면 못 물린다? SKT·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소비자의 ‘청약(개통)철회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신서비스를 개통한 경우 ‘통화품질 불량’에 한해서만 환불·교환을 해주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 정부가 개선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약정철회 안돼 소비자 불만 커져
이통사 “단말기불량은 제조사 책임”
미래부, 제도개선TF ‘제자리걸음’
#사례 1. A씨는 올해 8월 전자상거래를 통해 기기변경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하지만 배송된 단말기의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개통이 불가능하자 통신사는 제조사에게 기기불량 판정서를 받으라고 안내했고, A씨는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 메인보드 불량이라는 판정을 받아 통신사에 제출했다. 그러나 통신사는 특별 프로모션 케이스라 ‘개통 철회가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사례 2. B씨는 올해 4월 통신사 대리점에서 24개월 약정으로 이동전화서비스를 계약하고 단말기를 수령했다. 집에 와서 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약정기간 및 단말기 할인 조건이 당초 설명과 상이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로워 단말기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은 상태로 이틀 후 단말기 반납 및 청약철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사례 3. C씨는 3월에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24개월 약정 할부로 이동전화서비스를 계약했으나 신분증이 없어 개통하지 않은 상태로 단말기만 수령했다. 3일 후 대리점으로부터 이동전화서비스가 개통됐다는 연락을 받고 사용여부를 고민하다가 구입 6일 만에 청약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리점은 “단순변심에 따른 청약철회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사례 4. D씨는 올해 1월 모 통신사로 번호이동 가입 후 일주일 만에 통화품질 불량으로 청약철회를 요청했다. 이에 통신사 측에서는 단말기 이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해 단말기 제조사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단말기에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재차 통신사에 청약철회를 요청했다. 이후 통신사에서 D씨의 거주지를 찾아 통화품질을 측정, 통화품질 불량으로 확인됐으나 이 과정을 거치면서 ‘철회 가능 기간’이 지나버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2016년 8월까지 이동전화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총 1887건으로 이중 청약철회는 179건(9.5%)을 차지했다. 청약철회 신청 이유는 단순변심 66건, 단말기 불량 36건, 안내미흡 44건, 통화품질 불량 15건, 기타 18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청약철회와 관련된 소비자 불만이 커진 이유는 이통사들이 만들어둔 까다로운 청약철회 조건 때문이다.
현재 SKT·KT·LG유플러스 등은 약관에서 ‘통화품질 불량의 사유로 신규 가입일로부터 14일 내에 해지 시’의 경우만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통화품질 사유만 철회가 인정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민원이 발생하는 등 소비자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전자상거래법·방문판매법·할부거래법 등에 따르면 청약철회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해 놓고 단순 변심이나 물건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 일정 기간 안에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 책임 없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에 신규 단말기 구입과 통신서비스 개통이 한 곳(대리점 등)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 소비자들의 청약철회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이 문제로 국회에서 정책간담회를 연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실 측은 “고급 스마트폰은 100만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임에도 통신3사 약관에는 통화품질 불량의 경우에만 약정위약금 없이 교환·환불이 되도록 규정돼 있어 소비자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의 청약철회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향후 발생 가능한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통3사의 대리점들. (사진=CNB포토뱅크)
제조사-이통사 얽히고설켜 책임 모호
반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과 ‘단말기 구매계약’은 각각 별개의 계약이므로 단말기에 대한 소비자불만을 이통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이통사 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단말기 계약 당사자는 가입자와 대리점(유통망)이므로, 이통사가 단말기 계약의 철회를 수용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CNB에 “이통사만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단말기 불량은 제조사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각 주체들이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청약의 환불·교환 등으로 발생되는 비용은 고스란히 사업자들이 떠안게 되는데다, 블랙컨슈머가 이를 악용할 우려도 있어 이런 부문에 대한 방지책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는 “이통사에게 무조건 개통철회 사유를 확대하라고 한다면 무리가 따른다”며 “각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긍정적으로 의견을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래창조과학부는 소비자단체들로부터 청약철회권 강화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 3월부터 소비자단체, 이통3사, 학계·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통신소비자 제도개선 연구반’을 구성해 매월 두 차례씩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이통사는 미래부에 ‘전기통신서비스별 요금 및 이용조건(이용약관)’을 신고해 인가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휴대폰의 청약철회 문제는 이 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유통구조는 서비스개통과 단말기구입에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지만 관련법은 한 개만 존재하고 있는 셈”이라며 “현실에 맞게 법안 정비부터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