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경제학원론 교과서 첫 장에서는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원칙을 설명하고 시작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경제현상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너무 많아 이를 일일이 고려하면 어떠한 경제학 이론도 현실에 적용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꼭 필요한 변수 이외 나머지 변수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설명한다.
어떤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이 물건을 찾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굳이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항상 그럴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 회사에서 시중 제품보다 30% 정도 낮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모피코트를 백화점에 납품하였다. 모피코트 시장 저변확대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외면했다. 다음 해 동일 제품을 가격을 올려 다른 브랜드로 출시했을 때는 대박이 났다. 이성(理性)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을 현시적 소비, 경제학에서는 베블렌 효과라는 말로 가르친다.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는 줄어들어야 한다는 상식에 대한 예외다.
시행한지 4년이 지난 지금 냉정히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당초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대형마트 일요일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주부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재래시장을 향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형 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 다는 것을 알고 토요일에 미리 장을 보던지 월요일까지 참는 경우가 더 많다. 더하여 대형마트들이 일요일에도 활용 가능한 온라인쇼핑몰을 적극 공략하고 토요일 날 다양한 판촉 활동을 벌이면서 일요일 영업시간 제한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불가피하게 일요일에 식료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일요일에 골목시장을 이용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골목상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체재의 수요를 막으면 기존 제품의 수요가 올라갈 것이라는 경제원칙의 예외가 현실에서 보여진다.
‘ceteris paribus’ 가정은 여타 조건이 불변하는 짧은 기간의 시장경제의 가격분석을 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유용하다 말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가정에 따른 가격분석을 ‘비교 정태분석(comparative static analysis)’이라 부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변수들이 변동할 가능성을 일단 논외로 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의미다.
현실 경제학은 교과서 경제학보다 어렵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는 현실에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선택의 문제는 일차함수 보다는 다차원의 복합함수가 대부분이다.
이번 정부에 유달리 많이 참여하신 교단의 교수님들은 ‘여타조건은 불변’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계획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여타 조건의 변동’ 때문에 효과를 얻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정세현의 튀는 경제]는 매월 1회 연재됩니다
■ 정세현 (문제해결 전문가)
현 티볼리컴퍼니 대표, 한우리열린교육 감사
전 삼일회계법인 PwC Advisory 컨설턴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영국 Nottingham Trent University 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