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으려는 순간 사진을 찍겠다고 ‘잠시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라면 기다려 줄 수 있다. 보통 이들은 사진을 찍고 나서도 바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음식을 맛보기 보다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여행지에 가서도 그 시간과 느낌을 경험하기보다는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연신 카메라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비단 젊은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SNS에 사진 올리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붐이다.
분명 세상은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한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 며칠 되지 않아 청와대는 ‘격의 없이 소통하겠다고 이야기해 온 문재인 대통령이 측근들과의 소통부터 원활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모습’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문 대통령과 핵심 비서관들이 손에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훤칠한 인물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대통령 양 옆에 서 있다. 찰칵.
기업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 마련된 자리에서도 대화 내용보다는 '호프타임' 사진이 먼저 공개되었다. 민감한 얘기가 오갈만도 했을 텐데 세상은 그 날 마신 소상공인이 만들었다는 수제맥주 브랜드에 더 관심을 보였다. 사전 조율을 통해서 이날 드레스코드는 노타이 정장으로 통일되었다. 기업인들의 시선은 대화 상대방이어야 하는 대통령이나 서로를 향하기보다는 정면의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찰칵.
노동계와의 대화 자리에서 주인공은 담당자들이 아니라 접시 위의 전어였다. 맛도 좋고 굽는 향기가 고소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전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모두 대화의 장소에서 만나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설명했으나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전어쇼는 빛을 바랬다. 찰칵.

▲지난해 7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기업인들의 간담회 모습. (사진=청와대)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돼 출퇴근 시간 버스·지하철 요금이 면제된 당일, 지하철로 출근하는 모습을 언론에 비추었다. 평소에 지하철로 출근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게이트에 교통카드를 대는 시간을 언론에 알리고 기자들은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찰칵.
정치는 쇼로 시작해 쇼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 생리상 당연하고도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상 많은 국가에서 정치 쇼를 벌려왔다. 당시에는 쇼인 줄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서 쇼로 밝혀진 것이 많다.
소통에 무능했던 정부를 대신해서 들어선 정부이다 보니 보여주는 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잘 기획된 쇼가 소통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지된 환하게 웃는 사진보다는 책상을 치며 불편한 대화를 하는 날선 화면을 보고 싶다.
* [정세현의 튀는 경제]는 매월 1회 연재됩니다
■ 정세현 (경영사상가)
현 티볼리컴퍼니 대표, 한우리열린교육 감사
전 삼일회계법인 PwC Advisory 컨설턴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영국 Nottingham Trent University 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