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를 수행하다보면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관련자료를 모으고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프로젝트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 놓고 이에 부합되는 자료들만 취사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경우를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보다 신념과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보통 이에 해당한다. 확증편향은 갖고 살면 세상 살기가 덜 피곤해진다. 보고 싶은 현실만 보면 되고 이에 반하는 현실은 눈감으면 된다. 신념이 투철하지 못해 반증(反證) 자료가 보이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 되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사람 사는 세상에 완벽한 정책이란 드물다. 정책을 시행했을 때 예상했던 또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side effect)이 대부분 발생한다. 알코올이 끼치는 사회적 폐해를 막고자 시행되었던 선한 의도의 금주법도 밀조, 밀매 등의 범죄만 양상했다. 미국헌법 수정 제18조에 의해 대못이 박혔던 금주법은 치열한 찬반 양론 속에 10년 넘게 지속되다가 1933년에서야 헌법수정 제21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학교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외고와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려 하자 예상치 못했던 강남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인접한 부동산 가격까지 움직이자 정부는 수요억제에 근거한 대책을 내놓았고 어렵사리 본인 집을 마련하려던 사람들의 계획에 차질이 빚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다고 공교육 정상화에 반대하는 학벌지상주의자가 아니다.
선행학습을 막겠다고 초등학교에서의 방과 후 영어학습을 금지하자, 고액 영어학원으로 학부모들 발길이 쏠리고 있다. 당초 의도와는 달리 서민층 자녀들의 교육 기회만 박탈하고 가계의 부담만 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지적한다고 사교육 맹신주의자가 아니다.
압축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홀했던 일에 대한 가치를 보상하겠다고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고민하고 가족에게 일을 시키며 직접고용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얘기한다고 친자본, 친재벌주의자도 아니다.
누구든 일 하는데 있어서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프로’라면 일의 진행에 따른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도 같이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
아니면 솔직하기라도 해야 한다. 이런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이런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 지지자들에게 감수하고 참으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집행자(사실 정치인들)들이 무슨 마법의 손을 지녔다고 ‘동그란 네모’나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가.
더하여 키보드 앞에 앉아있는 열렬 댓글참여 전사들도 조금은 냉정해졌으면 한다. 당신네들이 지지하는 문재인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말한다고 촛불정신의 망각도, 적폐청산에 대한 반대도 아닌 것이다.
집권한지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일의 성과를 만들고 진도가 나가야 한다.
물론 본인도 알고 있다. 현실 정치판에서 실무형 인재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성과가 있다면 역사책에는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처음 정치를 시작했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 [정세현의 튀는 경제]는 매월 1회 연재됩니다
■ 정세현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현 티볼리컴퍼니 대표, 한우리열린교육 감사
전 삼일회계법인 PwC Advisory 컨설턴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영국 Nottingham Trent University 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