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한 편의 첩보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다. 세계가 거대한 자본과 정치적 음모에 의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빌더버그 클럽’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전 인류의 노예화’라는 다소 충격적인 프롤로그에서 책의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소수가 지배하는 인류란 생각만으로도 앞이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
“악몽의 종착역은 지구 전체가 감옥화되는 것이다. 그곳은 세계 유일 시장에서, 세계 유일 정부가 통치하고, 세계 통합군이 감시하며, 경제적으로는 세계은행이 관리 감독하고, 마이크로칩에 의해 통제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마이크로칩은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범 우주적 슈퍼컴퓨터와 접속하여 일하고, 물건을 사고, 아이를 낳고, 잠을 자게 될 것이며, 이 컴퓨터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게 될 것이다.”(프롤로그 중)
저자는 미래 첩보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온 듯한 내용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들이 손에 진땀을 흘린다면 경험에 근거한 침착한 어조 때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저자가 말하는 이 ‘픽션’은 매년 열리는 네덜란드에 위치한 빌더버그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회의로 기업가, 은행가, 정치가, 국제기구 운영자, 언론사주 등 서구를 대표하는 100여 명이 주도하는 회의다. 1954년 이래로 진행되어 온 회의라고 하니 놀랍다. 이 클럽을 취재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임이 그렇거니와 실제로 저자가 여러 위험과 함정을 뚫고 취재한 취재기 라는 것이 설득적으로 다가온다. 책의 진위를 표명하는 것이 제한적 상황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이 모임에 관한 베일은 충분히 점검되고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임엔 틀림 없어 보인다.
저자 다니엘 에스톨린은 기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16년째 빌더버그 클럽을 추적 조사하고 있으며, 자신의 홈페이지(http://danielestulin.com)에 빌더버그 클럽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책은 사회과학서임에도 첩보영화의 그것을 꼭 닮았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또한 영화판권 계약이 성사되어 더욱 흥미롭다. 랜덤하우스 펴냄. 360쪽.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