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50年 산증인 베트남서 갑자기 별세
시신 27일 국내로 운구…5일간 ‘사회장’ 엄수
7전 전승 ‘선거의 왕’…DJ·盧·文 등 여권 ‘키맨’
26일 여의도 정가에 따르면, 25일 별세한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장례가 오는 27~31일 5일간의 사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훈을 남긴 사람이 별세했을 때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거행하는 장례의식이다.
민주평통 한 관계자는 2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시신은 현재 베트남의 한 군 병원에 임시 안치돼 있으며, 오늘 밤 대한항공편으로 현지를 떠나 내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될 예정”이라며 “장의 형식은 유족 및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수석부의장은 베트남 출장 중 지난 2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현지 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께 향년 74세의 일기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몸살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치민으로 출국했으나, 다음날인 23일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긴급 귀국을 위해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호흡 곤란과 심정지 현상에 와 호치민 탐안(Tam Ahn)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정치권에서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화 운동 세대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수석부의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4명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모두와 때로는 ‘킹메이커’로서 때로는 ‘정치적 동지’, 또한, 조언해주는 ‘당 원로’로서 깊은 관계를 맺었던 장기간 민주당계의 중추를 맡은 정치 거물이다.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1952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해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후 1971년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곧바로 자퇴했고, 이듬해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로 재입학한 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이 수석부의장이 한국 민주화 운동에 투신 핵심 계기는 1972년 10월 일어난 유신이었으며,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복역한 후 졸업하지 않고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등 직장인 생활을 하며 민주 진보 진영의 재야인사로 지내다가 지금도 한국의 중요 출판사인 돌베개 출판사를 창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수석부의장은 1980년 서울의봄이 되어서야 복학해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민주계 정치권에 투신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아래의 동교동계 인물로 분류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다시금 옥고를 치루는 과정을 거치면서 1985년이 되어서야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이후 이 수석부의장은 1988년 재야인사들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해 13대 총선에서는 서울 관악구을에서 당시 보수 진영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민주정의당 김종인,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 뒤 내리 5선을 지낸 후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겨 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7전 무패’의 신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018년 당 대표 경선 당시에 “엄격한 DJ를 모시고 당 정책위의장을 3번이나 하면서 정치를 배웠다”고 회고했으며,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돼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주도, ‘이해찬 세대’라는 말을 탄생시키는 등 김 전 대통령 그늘 아래서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갔다.
그리고 이 수석부의장은 노 전 대통령과는 참여정부 출범 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동지적 관계를 구축하는 등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실세 총리’로서 국정 전반을 끌고 가며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더구나 이 수석부의장이 노 전 대통령보다 6살이나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에서 ‘맞담배’를 피웠다는 일화가 양측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으로 자리매김한 이 수석부의장은 문 전 대통령의 두 차례에 걸친 대선 도전에서 ‘킹메이커’로 역할을 했으나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통령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이 전 총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안 후보 측의 압박 속에 대표직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당선된 다음 해인 2018년에는 당 대표로 재선출돼 특유의 정치적 무게감을 토대로 강력한 장악력을 발휘하며 ‘민주 정부 20년 집권 플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이른바 ‘20년 집권론’을 앞세워 강력한 여당을 구축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도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경선 때부터 이 수석부의장이 사실상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했고, 이는 당시 ‘이재명 대세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지난해 대선에서는 당 원로로서 집권 청사진을 만드는데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수석부의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은 대신 이른바 ‘이해찬계’ 의원들은 선대위에서는 물론 정권교체 이후에도 핵심 포스트를 지키며 여전한 영향력을 입증하는 등 인연이 가볍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대통령 역시 이 수석부의장에 대한 ‘예우’에 힘을 쏟아 지난해 10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했고,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대북·통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선”이라고 설명하면서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의지를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3일 이 수석부의장이 베트남 출장에서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즉시 6선의 조정식 청와대 정무특보를 현지에 급파한 것은 물론,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상황 파악과 치료 지원에 힘쓸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