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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정치와 기업 ⑪] 호통·갑질 ‘국감 문화’, 문재인 시대에는 사라질까

‘적폐’ 신세 된 국감…식상한 레퍼토리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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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강훈기자⁄ 2017.06.01 09:09:48

CNB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보다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연재하고 있는 <연중기획-정치와 기업>의 이번 주제는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돼온 의원님들의 호통·갑질 문화입니다. 재벌 총수들을 불러놓고 호통 치는 뿌리깊은 권위주의 문화가 촛불 시민들이 탄생시킨 새정부에서는 사라질까요. <편집자주> 

▲국정감사가 '기업감사'가 아닌 정책·민생감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재계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12월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한 국내 대기업 총수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의원 이름알리기 필수코스된 국감
재계총수 불러서 조명 받기 혈안 
‘스타’되기 접고 국민 속 들어가길 

새 정부가 ‘재벌개혁’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이를 빌미로 매년 문제가 되고 정치권의 ‘국감 갑질’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의 사전적 의미는 국회의 감시·비판 기능을 근거로 국정전반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민 대신 견제자로 나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국감은 행정부를 감시하는 자리가 아닌 기업총수를 불러 호통하고 면박 주는 곳으로 변질됐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조에서 감사의 대상을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감사원법 대상기관으로 정해놓고 있음에도 ‘관련성’과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며 총수와 CEO(최고경영자)를 증인석에 앉히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인의 국정감사 증인 수는 16대국회 때는 국감 평균 58명, 18대 77명, 19대 124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9월 열린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에서는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을 포함한 150여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신청됐다. 

이를 두고 국회의원의 ‘기업인 길들이기’, ‘이름 알리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해당 기업의 실무책임자를 불러도 될 일을 굳이 오너나 대표를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면 임원이나 부장·차장급으로는 약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일단 부르자고 보는 식이라 참석한 기업인들이 질문도 받지 못하고 헛걸음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19대 국감에 출석한 기업인 증인 가운데 5분 미만으로 답변한 비중은 76%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12%는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작년 국정감사도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당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와 청와대의 수용 불가 발표로 인해 여야가 격렬히 대립하는 바람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됐던 천강옥 삼성전자 부사장, 김재필 티브로드 대표 등은 국감장에서 대기만 하다 돌아갔다. 

의원들의 윽박지르기와 일방적인 지적, 엉뚱한 질문으로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진해운 물류사태로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사과요구와 지적을 들어야 했다. 황현식 LG유플러스 PS본부장은 휴대폰 다단계 판매 중지와 관련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대답했다가 호통을 듣기도 했다. 2015년 국정감사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냐”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국감이 국회의원의 민원해결 창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국회의사당 제1회의장 입구 앞 국회마크. (사진=손강훈 기자)


재벌개혁 빌미로 악용될까 우려

더 큰 문제는 국감이 국회의원의 ‘민원해결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적폐’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그룹의 오너나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뒤, 국감소환을 빼주는 조건으로 민원을 해결하는 식이다.   

기업입장에선 회사의 총수나 사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면 자료준비와 리허설에 여러 날이 허비된다. 기업 이미지가 입는 타격도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증인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의원들이 제시하는 지역구 민원, 인사청탁 등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예 대놓고 민원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이재용·최태원·김승연·신동빈·정몽구·구본무·조양호·손경식 등 8명의 대기업 총수가 참석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구미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이 이전해 일자리가 줄었다”며 국내투자를 늘릴 것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요구했고, 국민의당의 한 의원도 여수에 있는 롯데케미칼이 그에 걸맞는 기여를 하지 않아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는 국정조사와 전혀 상관없는 민원성 발언을 했다.    

이처럼 기업에겐 국감이 악몽일 수밖에 없다. 민원과 청탁, 호통과 망신주기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을 적폐·구태세력으로 규정해 개혁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편법증여, 일감몰아주기, 문어발식 확장 등 재벌의 고질적인 병폐에 메스를 댈 생각이라 국감장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한 재계관계자는 CNB에 “기업이 정치권력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며 “국민들의 높아진 시민의식을 토대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만큼, 기업감사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책·민생국감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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