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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보훈지청, 임시정부 요인 유족 위문

관내에 거주하는 임시정부 요인 유림, 이동녕, 차이석 선생의 유족 위문하고 대통령 명의의 위문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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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병곤기자 |  2022.04.08 14:19:42

독립유공자 유림 선생의 유족(사진=경기남부보훈지청)

경기남부보훈지청은 오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난 7일 관내에 거주하는 임시정부 요인 유림, 이동녕, 차이석 선생의 유족을 위문하고 대통령 명의의 위문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이동녕 선생은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연좌시위를 벌여 조약의 무효와 파기를 선언하다가 체포되어 2개월간 투옥 생활을 감수하였다. 이후, 만주 북간도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이상설, 여준 등과 서전의숙을 설립하고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지난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이회영, 김구, 이동휘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고 활약했으며, 1910년 만주 서간도로 옮겨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 남만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해삼위로 가서 이상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내무총장, 국무총리, 국무위원 겸 주석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유림 선생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919년 3·1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시위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신한청년당(1921), 정의부(1928) 등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1929년 조선공산무정부주의동맹 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및 국체변혁의 결사조직죄라는 죄명으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41년 10월 임시정부 의정원 노동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차이석 선생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청년시대부터 신민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 사내총독 암살 사건 관련으로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으며, 3.1운동 후 상해에서 한국독립당간부, 임시의정원의원을 각각 역임하였다.

 

1933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어 이후 13년간 비서장으로 활약하다가 중경에서 병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용주 지청장은 “독립을 위하여 이역에서 투쟁하셨던 지사님들의 공로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업적을 기억해 주시길 바라며, 애국지사님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후대에 잘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은 1919년 3.1운동의 확산 이후 국외에 근거지를 두고 독립운동을 계속해 나가고자 했던 애국지사들의 노력으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최초의 민주 공화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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