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기자 |
2025.08.22 11:31:51
대통령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21일 예정 시간보다 15분 늦게 기자단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범정부 자살 대책을 토의하느라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부처별로 온갖 자살 대책을 내놓고 토론을 벌이느라 늦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온라인 게시글로 확인되는 자살 위험 징후를 신속 탐지해 대처하라고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전했다. 극단적 선택 전에는 온라인 글 등을 이용해 뭔가 말을 남기기 쉬우므로 효과가 있을 법한 지시 사항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정책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20년 넘게 OECD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 사회적 재난의 ‘근원’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어디가 어떻길래 압도적 자살 1등을 절대 놓치지 않고 있냐는 질문이다.
‘SKY + 강남’이라는 초대형 싱크홀
이재명 정부의 교육부 장관은 현재 공석이지만, 후보자 지명 때마다 대통령실이 내놓는 설명 중 하나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실천의 적임자다”라는 문구다. 그래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개념의 출발점이라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2021년도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읽어봤다.
이 책은 앞머리에서 바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두 가지를 짚는다. 바로 SKY 학벌 독점과 서울의 집값 독점이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었는데도 헬조선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서울이라는 공간권력과 SKY라는 학벌권력의 독점체제에서 기인하는 강도 높은 경쟁과 이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감 때문이다.”(47쪽)
이 진단에 공감한다면, ‘SKY + 강남’이라는 두 독점이 국민 절대다수에게 패배감을 안기는, 그래서 ‘자살 세계 1등’의 기본 추진력이 된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SKY 대학 졸업자는 전체 한국 인구의 1% 미만이다.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집값이 최고라는 ‘강남 3구 + 용산구’에 사는 사람은 인구의 4% 미만이다. 1~4%를 제외한 나머지 96~99%에게 평생 열패감(“나는 패배자야”라는)을 안겨주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김종영 교수의 제안은 간단하다. 서울대로 들어가는 차선(성공으로 가는 길)이 현재 1차선으로 너무 좁으니 차선을 10개로 늘리자는 것이다. 지방 9개 국립대에 주는 예산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서울대’ 명칭을 공동 사용하거나, ‘한국대’로 명칭을 고치면 SKY 대학에 못 간 열패감을 치유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그 성과를 지켜볼 일이다.
또한 ‘강남 집값’을 잡을 부동산 정책도 8월 안에 내놓을 예정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근본 원인이 ‘SKY + 집값 열패감’이라면 앞으로 4년 반 뒤 시점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서울 집값 잡기’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따라 자살 1등 기록의 유지냐 중지냐가 결정될 듯하다.
'조국 탓 지지율 하락' 각오했다는 민정수석
최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면 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로 떨어졌다고 난리들이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21일 기자 간담회에서 “조국 전 대표를 사면하면 지지율 4~5%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사면했다”고 말했다.
이런 자세는 믿음직스럽다. 지지율에 연연 또는 만족하다가 정권을 ‘반민주 세력’에게 내준 문재인 전 정권의 치명적 실수를 적어도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지지율 때문에’ 저지를 것 같지는 않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문재인 시절 이른바 민주 시민들은 정권의 지지율만 지켜주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다. 정권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의 지지율은 마지막까지 45%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여론이란 곧 보도의 반향이므로 믿을 게 못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좋은 기사가 이어지면 지지율이 오르고, 나쁜 기사가 이어지면 지지율이 떨어지므로, 지지율이란 결국 언론의 조작 대상이라는 지적이다.
요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의 자세가 만만치 않다. “뭐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며 뭐 하나를 걸기 위한 결기가 이들 언론의 기자들 질문에서 읽힌다. 나쁘게 보도하면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공식을 언론들은 잘 알고 있다.
언론이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지지율?
높은 지지율을 ‘언론을 통한 당장의 박수’라고 해석한다면, 이런 면에서도 이 대통령은 든든한 측면이 있다.
그는 지난 13일 정부와 민간의 예산 전문가들을 초청해 개최한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톡 쏘는 조크를 날린 적이 있다. 입장하는 그를 일동이 박수로 맞자 “제가 들어올 때 박수는 왜 친 거예요? 제가 박수받을 일은 없는데(웃음)”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어진 모두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고, 고민이 많다.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 참 답답하다. 지금 한 됫박 빌려다가 씨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 수확할 수 있으면 당연히 빌려다가 씨 뿌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함께 고민해 보자”고 발언했다.
‘이제 겨우 봄인데 무슨 박수냐? 가을에 수확을 보고 박수를 치든지 말든지를 결정해달라’는 당부다. 당장의 박수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이런 태도를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실 보좌관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도 모두 가지면 좋을 텐데, 과연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른바 ‘민주 시민’들도 당장의 내가 박수치기, 또는 다른 사람들이 박수치는 소리 듣기(즉 지지율 지켜보기)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중요한 건 4년 뒤의 성과에 따른 지지율”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당장의 지지율 오르내름보다는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할 일은 하는’ 자세가 가을 수확기의 ‘지지율 최종 스코어’에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