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원리나 지식에 인문학을 접목해 인본주의적 과학기술을 창출해 나가자는 주장인 ‘공문(工文)’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꽃다운 젊은이 1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과학적·인문학적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공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에 CNB뉴스는 공문의 창시자인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의 칼럼을 최초 연재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공문은 ‘인간에 의해 기술이 그리는 무늬’로 정의된다. 최 교수는 “인간에 의한 ‘기술의 동선’이 공문”이라며 과학기술계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편집자주>
철학자 베르그송은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 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인간의 본질을 강조하였다. 원시시대 인간의 주된 도구는 돌멩이와 나뭇가지였다. 그후 마제석기로 달라지면서 청동기나 철기로 더 강력하고 정교한 도구로 급속히 발전되었다.
150W에 불과한 힘을 가진 인간이 들짐승을 길들여 750W의 힘을 갖는 가축을 도구화한 것은 실로 큰 사건이었다. 가축을 이용하여 수확의 증대는 물론 먼거리 이동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술이 과학의 도움을 받아 축적에 축적을 거듭하면서 정교해진 도구들로 원자핵, 인공위성, 스마트 폰, 인공지능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끝을 예측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은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그 성과물인 첨단화된 도구들은 이제 우리 신체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의 격차로 인해 과학기술의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이제 과학기술에는 ‘따듯함’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수혜지대에 살지만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들을 위한 ‘배려의 과학기술’ 개발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래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게 바로 지구 환경의 악화이다. 토양, 대기나 수질 등의 환경오염 등을 해결하고자 여러 나라들이 모여 탄소중립, 메탄가스 억제, 신재생에너지 사용 등의 대책을 내놓기 바쁘지만, 여전히 온난화는 가속되고 있다.
한번 편의의 늪 속에 푹 빠져버린 인간들은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은 형상이다. 더구나 빙하의 해빙으로 해수면 상승은 물론 심지어 고대 바이러스의 재창궐까지 우려하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증기기관을 필두로 한 제1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인류 복지를 향한 출발이라기보다 인류 멸망이 시작된 첫발이라고 말한다면 과할까.
화석연료를 이용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바로 우리 삶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의 환경마저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늘 가정을 전제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간 과학 특히 기술이 갖는 원죄였다. 이제부터라도 과학기술로 야기된 문제들을 과학기술로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바로 ‘과학기술의 청정함’을 위해서 말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인류복지에 쓰여야…법·제도 정비 시급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예측하기 힘든 강풍과 폭우 등으로 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더구나 사회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도처에 사건사고들이 다량 발생하고 있다. 교통사고, 강력사건들이나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고 역시 적지 않게 발생되고 있다.
이 모든 사건 사고들을 어쩌다 발생되는 것으로 단순히 넘길 일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사건사고들을 보다 세분하여 유형별로 분석하고 빅데이터화하여 순간순간 발생될 또 다른 사건사고에 실시간으로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CCTV를 설치하여 범죄자를 추적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여전히 많다. 보다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데, 단순히 느끼고 감지하기만 하면 안 될 것이다. 그에 상응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한다. 상시감시 시스템에 대처 기능을 추가시켜야 한다. CCTV로 수상함을 느꼈으면 행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로 드론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의 기술로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발생한 안타까운 이태원 참사에 예컨대 드론이 등장하여 빛과 음성으로 안내하고 안전하게 유도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 예방을 위한 연구와 연계는 이제 과학기술이 짊어져야 할 새로운 책무가 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는 관련 법의 제, 개정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효율과 향상을 위하여 끝없는 진화를 하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과 완전 복지를 향하여 그 발전의 속도를 과학기술적으로 조절하는 것 역시 중요시 되어져야 한다. 과학기술은 본디 인류의 복지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은 결국 이태원 참사 같은 안타까운 비극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전 건국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