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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의 공문(工文)산책⑦] ‘물의 배신’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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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규하기자 |  2023.09.22 10:15:48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태초에 우주의 먼지구름 속 여러 물질이 날아와 지구를 이루었다. 지구의 생명체들에게 물과 흙이란 극히 소중한 것이다. 바로 생명체가 물에서 생겨났고 흙 위에서 살며 그 속의 온갖 먹거리들로 생명을 유지해 왔었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그 소중하다고 여겼던 물과 흙으로 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는 큰 피해를 보았다. 이제 물과 흙은 더이상 우리의 벗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물과 흙이 필요했던 것이었지, 물과 흙이 우리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히 소중하지만 오히려 잘 다루어야 할 경계 대상이었다. <편집자주>


 

 

#1. 그저 고마우면서 교훈적인 물

물(H2O)은 화학적으로 수소 2개와 산소 1개가 절묘한 비율로 형성된 물질이다. 이러한 물은 온 세상 생명체의 근원이 되고 또 우리 생명체의 목숨을 부지해 주는 그저 고마운 존재이다.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3일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러한 물이 관여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는데, 지구 곳곳에는 물론 우리 몸에까지 침투해 무려 7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니 우리 몸은 그저 물통에 불과한 셈이다.

물은 담기는 그릇의 모양을 탓하지 않으며 함께 할 물질을 거부하지 않는다. 좁은 접시에서 담담히 달을 담아내는 물의 아량에 그저 감동이다. 맹자는 ‘물이란 근원에서 솟아나 흐르다가 여울을 만나면 채우며 가는데 그 흐름에 빠뜨림이 없고 그 채움에 차별이 없고 그 흐름에 멈춤이 없다’ 하여, 인격 수양과 학문 연마의 자세를 물의 속성에서 배우라는 관수(觀水)를 논하였다. 세상이 이토록 발전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철학이 탄생, 발전하고 나아가 과학기술이 융성해졌으니까.

#2. 날카로운 발톱을 숨겨왔던 물

또 물은 보통 재간꾼이 아니다. 변태의 귀재다. 보통 때는 흐르는 액체인 물로 있다가 추울 때는 단단해지고 더울 때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가 된다. 그러다 열 받으면 아주 격하게 변한다. 이러한 물의 성질을 이용, 증기기관까지 만들어 인간은 제1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의 시대를 열었다. 열 받을 때보다 오히려 물이 무리를 지을 때 오히려 더 무서운 것 같다.

평화롭기까지 한 호수나,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그리고 철썩이는 바다는 아주 낭만적이다. 하지만 무리 지은 물의 깊은 속에는 언제나 위협적 발톱이 숨겨져 있다. 급물살이나 홍수 또 노도와 같은 것들로 변모해 버리면 그 발톱을 심히 드러내는데, 매우 위협적이다. 올해 여름 유독 심했던 폭풍, 폭염, 특히 폭우를 통해 우리는 그 날카로움을 절감했었고, 지구가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그간 숨겨진 발톱을 보게 되었다.

#3. 우리 생명의 터전인 흙과 땅

언젠가부터 만들어진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었고 그 돌이 다시 깨져서 흙이 되었다. 땅 위에 널리 펴져있는 돌과 흙은 내리쬐는 태양빛과 쏟아지는 눈비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다시 잘게 부서져 고운 흙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흙은 중력과 압력으로 단단해지면서 또 바위로 변해갔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지구상에는 많은 흙이 생겨났다.

그 흙으로 이루어진 땅이 바로 우리 생명의 터전이다.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 인간이 땅의 흙으로 빚어졌다는데, 이를 세상을 떠나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많은 생물체가 땅에 뿌리박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땅은 분명히 우리 삶의 뿌리며 또 흙은 자양분이다.

#4. 귀한 물과 중한 흙의 만남

물은 수증기로 하늘에 올랐다가 다시 비가 되어 땅 위로 떨어져 땅의 흙 속에 담긴다. 어떤 물은 다시 하늘로 가기도 하고, 또 흘러 강을 이루며 흘러간다. 어떤 물은 호수에 담기기도 하고 흙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흙과 물은 서로 돕는다. 흙은 물이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며, 또 물이 잔뜩 가진 온갖 때나 혼탁한 것들을 말끔히 걸러 준다. 결국 물은 투명하리만큼 영롱해지고, 흙은 기름지면서 또 단단해진다. 귀한 물과 중한 흙의 만남은 이처럼 아름답다.

흙은 촉촉이 젖듯 다가오는 가랑비 같은 물을 너무 좋아한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벗처럼 살포시 끌어안는다. 그 곁을 지나는 물은 부러운 듯 바라보며 짝을 찾아 여정을 계속한다. 흙은 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다 품을 만큼 가슴이 그다지 넓지는 못한 것 같다. 메마를 때 퍼붓는 물을 별로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5. 흙의 거부와 물의 배신

흙이 이미 어느 한 물을 품어버리면 다른 물까지 끌어안지는 못한다. 토질역학에서 흙의 포화상태라 한다. 바로 흙이 품을 수 있는 물의 양에 안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흙에게 거부당했던 물은 또 다른 흙을 찾으러 계속 이동하고, 결국 버림받은 물들이 길목에서 무리 짓는다. 그러고는 흙에 거부당한 큰물이 배신감으로 보복을 시작한다. 바로 홍수이다.

올해 여름 유난히도 많은 물들이 여기저기로 쏟아져 많은 것들을 쓸어갔다. 흙의 거부인지 물의 배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둘의 사이에 적어도 큰 불협화음이 있었던 거다. 그것으로 비롯되어 우리가 당한 큰 피해이다. 앞으로 우려되는 지역의 토양이 갖는 성질을 토질역학적으로 잘 분석하여 또 닥쳐올 이상기후에 미리 대처함으로써 더이상 흙의 거부와 물의 배신이 없도록 세심한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전 건국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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